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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기(解氷期) I - 언 江

2월의 첫날이다. 우리는 길고도 혹독한 추위를 견디어냈다. 추위가 온다고 또 그렇게 길고 매섭진 않으리라. 겨울동안 베란다에서 공을 드린 꽃나무들이 모두 얼어죽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지인이 소식을 보내왔는데 그 분도 이번 겨울에 오랫동안 길러온 화초들을 모두 얼려죽였다한다. 어쩌랴, 살다보면 자식도 잃고 평생 가슴 앓이를 하며 모든게 '신의 뜻'이라고 자위를하며 사는 나이가 된것을. 달력을 보니 이틀 후면 '입춘', 중순경에 '우수'가 들어있다.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江물이 풀리고있다. 아주 오래전, 양평 두물머리에서 뗏목을 띄우면 마포나루까지 떠내려와 나무와 곡식외 물품들을 내려놓았다 한다. 양수리의 나루터에서 시작하여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정착지로 매우 번창하였던 시절이었다..

산 따라, 물 따라 VIII - epilogue

울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누군가 말했습니다. - 당신의 여정은 언제나 끝이 납니까? 또 누군가 말했습니다. - 아직도 아픕니까? 나는 대답했습니다. - 나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그 끝은 언제일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합니다. 단지 그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그리고 나는 아픕니다. 엄살이 아니고 아침에 눈을뜨면 한 발자욱 내딪는것도 고통스럽습니다. 누군가는 또 물었습니다. - 이번 여행길에서 아픈곳은 치료가 되셨는지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 아니요. 똑같이 아픕니다. 천천이 낫겠지요. 그렇습니다. 아픈곳은 낫지않았습니다. 아마도 돌아가고나서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낫겠지요. 마음도 그렇습니다. 공연히 슬프고, 걷잡을 수 없이 울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시간이 흐르고나면 언젠가 잊어버리듯이 낫..

산 따라, 물 따라 VII - 울산 태화강

큰 강을 내려다 본다 고여있는듯한데 흐르고 있다 그렇다, 큰 강은 나의 흘러간 청춘이었다 고여있는듯했지만 항상 흐르고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급류로 흐르다가 어딘가에서는 제 자리를 맴돌며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건 늪처럼 고여 썪지않고 여기까지 계속 흘러왔다는 것이다 태화강은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하여 울산시 매암동 부근의 동해안으로 유입되는 길이 47.54㎞, 유역면적이 643.96㎢에 달하는 강으로, 울산지역민들과 역사를 같이하는 울산의 젖줄과 같은 소중한 하천이다. 태화강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대숲이 펼쳐져있는데 자그마치 그 길이가 십리라 한다. 겨울이 되면 갈까마귀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다가 대숲으로 내려앉는것도 장관이다. 태화강에서는 십리대숲과 더불어 연어, 은어 등 토종..

산 따라, 물 따라 VI - 울산 진하 솔섬

오늘 내가 바다에 온것은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 남아있는, 이젠 쓸모없는 감성의 부스러기와 아직 색 바래지 않은 추억과 그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 나도 그와 함께 버리고 싶다 가깝던 사람이 원수처럼 미워지는 날 바다를 앞에 두고 생각한다. 내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었던 걸까 저토록 서로 엉키고 밀쳐내는 바다처럼 우리도 서로 밀쳐냈다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걸까 ....................................... 아서라 예서 그만두자 나 죽어서 한 줌 재로 남아 저 바다에 뿌려지면 모든것이 그만이다 '진하'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있다. 정확하게는 진하해수욕장이지만,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명선도'로 더 알려졌다. 명선도는 해수욕장 앞에 있는 작은 솔섬이다. 명선..

산 따라, 물 따라 V - 간이역 [簡易驛]

2046년에는 광역 철도망이 온 지구를 돌고 미지의 기차가 2046호 별로 떠난다 2046行 승객은 모두 목적이 같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것... 2046의 별은 모든게 영원하다. 허나, 확인된건 아니다 되돌아온 사람은 없으니까... 나 외엔... 2046을 떠나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쉽게 떠나는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못 떠나는 사람도 있다 난 이 기차에 얼마나 있었을까? 이젠 점점 외로워진다. 거길 떠난 이유를 내게 물으면 난 모호하게 대답했다 옛날 사람들은 말 못할 비밀이 있을때면 산에 올라가 나무에 구멍을 파고 그 구멍에 비밀을 속산인뒤 흙으로 구멍을 막아버렸다. 그럼 비밀은 영원히 묻혀졌다 나도 한때 누굴 사랑했다 얼마뒤 그녀는 날 떠났고 난 2046별로 갔다 그녀가 거기서 기다릴것만 같았..

산 따라, 물 따라 IV - 양산 임경대(臨鏡臺)

낙동강 구비구비 흐르는데 벼랑위에 정자 하나 서있다. 정자에서 글읽던 선비는 어디 가고 그의 시만 남았느니, 아서라, 선비의 간 곳 찾지말자. 나 또한 그 길, 곧 갈것을. 임경대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낙동강(옛 황산강) 절벽 위, 오봉산 능선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일명 고운대, 최공대(崔公臺)라고도 한다. 이곳은 낙동강과 강줄기를 따라 둘러선 주변의 산으로 어우러진 명소로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즐겨 찾았던 곳이며, 그의 시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또 한 이곳은 주변의 산책길을 따라 산책을하다보면 최치원의 시, 외에 다른 선비들이 지은 시도 시비로 만들어 세워놓아 그 시를 한 수, 한 수 읽으며 감상하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카메라에 담아와 옮겨본다. (사진 순서대로) 임경대(臨鏡臺) 김효원..

산 따라, 물 따라 III - 낙동강 상류를 찾아서

새벽기차를 탄다 언제나 떠난다는 것은, 아니... 기차를 탄다는 것은 어설프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몽유병자처럼 어슬렁어슬렁, 느리게 기차를 타기위해 움직여야한다. 그러나 기차는 빠르다. 내가 어린시절에 탔던 증기기관차가 아니다. KTX, SRT. 요즘 기차들은 간이역을 거치지않고 달린다. 그렇게 나는 단 몇 분만에 어둠이 벗어지지않은 낯 선 곳, 낙동강 상류가 흐르는 곳에 내렸다. 멀리,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다리. 나는 밤 새 아픈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날이 밝기도 전에 새벽기차를 타고 저 다리를 지나서 강줄기를 찾아왔다. 물을 가둔 강뚝과 서있는 나무들의 색이 닮았다. 나는 나무에게 다가가 말했다. " 나, 너희들을 찍고 싶은데..." 새벽안개속에서 나무들은 웃으면서 승낙했다. 나는 가슴을 ..

산 따라, 물 따라 II - 영남 알프스

가을이 지나가면서부터 시인들은 차츰 자신의 언어만으로 글을 쓴다.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건 비단 시인들 뿐만이 아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조각가는 조각을 하고. 농부는 추수를 하며 씨앗을 저장하고, 여행자는 여행을 떠나고...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두 쏟아내라고, 그리고 가벼워지라고.. 먼산이 붉게 물들며 연일 T.V. News는 세계적인 전염병을 다루며 관광지에서는 특히 조심하라며 단풍이 곱게물든 명산을 보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려고 하다가 또 다시 자신을 지키기에만 급급하지않고 그래서 남의 말을 안듣는 고집불퉁으로 떠난다. 처음엔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주차장을 내려다보다가 불쑥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허리통증에 좋은 철분과 탄산이 함께 솟아나는 온천. ..

산 따라, 물 따라 I - 양남 주상절리

뼛속깊은 아픔을 안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푸른 바닷속에서 저 붉게 떠오르는 태양은 밤 새 앓으며 아파했을것이다 나는 이른 새벽에 바닷가에나와 묻는다. 얼마나 더 아파해야 우리는 치유될 수 있는가! 가을이 오면 우리는 아프다. 몸도 마음도. 그래서 집을 나와 산으로 바다로 정처없이 길을 떠난다. 어쩌면 치유의 여행이다 그렇게 떠돌다 보면 어떤이는 씼은듯이 낫는 사람도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고질병으로 남겨 겨우내 앓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함께 다니던 내 사우(寫友)에게 연락도 없이 혼자 길을 떠나 멀리 와버렸다. 이번 여행은 치유를 목적으로 했지만 아마 계속 아플것이다. 첫 번째 여행지는 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해안도로옆의 양남 주상절리다. 저 아픔의 결정체들, 바닷물에 잠긴 부채꼴 바위들... 나도 몸과 ..

가을빛에 물들다 II - 청송 주산지 II

"주산지도 많이 변했지요. 제가 어렸을적엔 저 가운데 죽은 나무가지를 붙잡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면서 놀았었지요. 이젠 나무도 거의 많이 죽었지요." 도토리묵채밥을 한 그릇 앞에놓고 막 숫가락을 뜨려는 내게 어느새 다가왔는지 술기가 오른 동네 주민이 말을건넨다. " 이곳이 고향이십니까?" " 예. 이곳에서 나서 자라다가 객지나가서 살다 3년전에 돌아왔지요." 그는 벽에 붙어있는 오래전 사진을 가리키며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그랬다. 그는 저 못속에 왕버들 나무가 무수히 많던 시절부터 이곳을 보아왔었던 것이다. 나는 그 왕버들이 가득했던 주산지를 못보는 것이 안타까워 벽에 걸린 옛사진을 내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모두 이곳에 소개하기로했다. 먼 훗날, 지금보다 더 이곳이 황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