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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깍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로맹가리 (Romain Gary) - 박정대

Paris, Rainy day. 백야현상일때는 밤이 되어도 이렇게 어둡지를 않습니다. 로맹 가리 박정대 바람이 분다, 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두 개의 중국인형이 있는 되 마고에 앉아 그대를 생각했어 저녁이었는데, 적막에 관한 아주 길고 느린 필름처럼 파리의 석양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어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석양이 오다니! 나는 환각과 착각 속에서 백야를 봤어 결전의 날, 마침내 나는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그대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전의 날은 왜 또 그렇게 쓸쓸한 적막처럼 내게로 불어왔던 것인지 저녁이었는데, 그대 떠나고 없는 거리는 붐비는 상념처럼 쉽게 어두워지지 않았어 이상하게도 어두워지지 않던 밤 9시의 뤼 뒤 바크에서, 뤼 뒤 바크의 적막 속에서, 뤼 뒤 바크의 적막을 ..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 박정대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박정대 기억의 동편 기슭에서 그녀가 빨래를 널고있네. 기억의 빨랫줄에 걸려 함께 허공에서 펄럭이는 낡은 집 한 채 조심성없는 바람은 창문을 흔들고 가네. 그 옥탑방 사랑을 하기엔 다소 좁았어도 그 위로 펼쳐진 여름이 외상장부처럼 펄럭이던 눈부신 하늘이, 외려 맑아서 우리는 삶에, 아름다운 그녀에게 즐겁게 외상지며 살았었는데 내가 외상졌던 그녀의 입술해변처럼 부드러웠던 그녀의 허리 걸어 들어갈 수록 자꾸만 길을 잃던 그녀의 검은 숲 속 그녀의 숲 속에서 길을 잃던 밤이면 달빛은 활처럼 내 온몸으로 쏟아지고 그녀의 목소리는 리라 목소리처럼 이름답게 들려 왔건만 내가 외상졌던 그 세월은 어느 시간의 뒷골목에 그녀를 한 잎의 여자로 감춰두고 있는지 옥타비오 빠스를 읽다가 문득 서러워지..

- 그의 애송詩 2021.10.09

'삶이라는 직업'중에서「약속해줘 구름아 」- 박정대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피운다 삶이라는 직업 커피나무가 자라고 담배연기가 퍼지고 수염이 자란다 흘러가는 구름 나는 그대의 숨결을 채집해 공책 갈피에 넣어둔다 삶이라는 직업 이렇게 피가 순해진 날이면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어 바르셀로나의 공기속에는 소량의 헤로인이 포함되어 있다는데 그걸 마시면 나는 7분 6초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삶이라는 직업 약속해줘 부주키 연주자여 내가 지중해의 푸른 물결로 출렁일때까지 약속해줘 레베티카 가수여 내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한 장의 구름으로 저 허공에 가볍게 흐를 때까지는 내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내가 어떡하든 삶이라는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내 삶의 유리창을 떼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구름아 그대 심장에서 흘러나온 구름들아 밤새도..

'삶이라는 직업'중에서「세상 모든 원소들의 백색소음 - 박정대

세상 모든 원소들의 백색소음 박정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세상을 가져 온다 바나나가 그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 눈밭 위에 앉아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처럼 그리운 소음 소음이 그리운 날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빠져나와 하루 종일 닉 케이브를 듣는다 닉 케이브라는 소음의 천사를 나는 예전에 알았다 그가 전직 천사였다는 것을 안다 너무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타락 천사가 된 그를 나는 인간적으로 듣는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소음 속에서 침묵을 추구한다 한없이 떠들어야지만 더욱더 견고한 고독이 완성되므로 여전히 사랑에 빠져 노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왜 그가 타락 천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해준다 사실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비극을 감싸 안으므로 우리는 장엄하..

- 그의 애송詩 2021.10.09

젖은 빨래

당신은 비보다 꼭 한 걸음 늦었다 그래서 꼭 그만큼 걷지 못한 빨래가 비를 맞고 있었다 꼭 그만큼 시간이 늦어져서 꼭 그만큼의 생이 뒷걸음질로 밀리고 있었다 - 이안 의 시집『목마른 우물의 날들』중에서 발췌 - 외출에서 돌아오니 비가 오네요. 윗 詩가 떠올라 올립니다. 그러나 윗 詩를 보면서 차라리 행복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천천이, .. Andante... Largo.... Adagio..... 그렇게 사는게 분명 행복할 것입니다.

- 그의 애송詩 2021.10.09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 김선정

내가 詩의 무대로 떠올렸던 Italy, Cinque Terre... 이곳에서 나는 아랫 詩를 떠올렸다 계속되는 장마로 서재에 틀어박혀 영화와 책들을 들추다 보니 몇일간 계속 Blog에 올린 '바다에 관한 명상- 시리즈'에 詩 한 편을 더 올리고 끝낼까 합니다. 이번에도 바다에 얽힌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실, 해외 이민 생활이 그다지 행복하고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기 외국의 어느 바닷가 절벽 위 마을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부부싸움을 하고 바닷가로 달려나온 여자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그 배경상황과 심리묘사가 눈에 선합니다. 외국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높은 절벽위에 해안마을이 즐비합니다. 이태리의 소렌토, 포지타노, 나포리, 그리스의 산토리니...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집들도..

- 그의 애송詩 2021.10.09

항구수첩 - 이외수

2011. 8. 3. 늦은 밤 다방에는 음악이 없었다 한 여자가 흐린 조명 아래서 음악의 부스럭지를 비질하고 있었다 어둠의 바다 정어리떼의 비늘이 희끗희끗 떠다니고 있었다 바바리코트를 펄럭이며 한 사내가 방파제 위에 서 있었다 여기는 바다 그대 그리우면 돌아갈 것임... 편지를 쓰고 싶었다 허이연 바람이 밀려가고 있었다 다시금 날이 밝고 있었다 생이손을 앓으며 뒤채인 지난 밤이 하얗게 표백되고 있었다 부두에는 목선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인부들이 밤의 시체를 져 나르고 있었다 월요일 다시 개임 다시 햇살 너무 멀리 떠나와 있었다 이외수 詩 ********************************************************** 윗 詩는 이외수씨의 '항구수첩'이라는 詩이다. 마치 김승옥씨의..

- 그의 애송詩 2021.10.09

가포(歌浦)에서 보낸 며칠 - 최갑수

가포(歌浦)에서 보낸 며칠 한동안 가포에 있는 낡은 집에 가 있었다 늙은 내외만이 한 쌍의 말간 사기 그릇처럼 바람에 씻기며 살아가고 있는 바닷가 외딴집 바다 소리와 함께 그럭저럭 할 일 없이 보고 싶은 이 없이 참을 만했던 며칠 저녁이면 바람이 창문에 걸린 유리구슬 주렴 사이로 빨강 노랑 초록의 노을 몇 줌을 슬며시 뿌려주고 가기도 했다 손톱만한 내 작은 방에는 구름처럼 가벼운 추억 몇 편이 일렁이며 떠 있기도 했다 그 집에 머물던 며칠 동안 내 가슴속 아슴하게 오색 물무늬가 지던 그러한 며칠 동안 나는 사랑이라든가 사랑이 주는 괴로움이라든가 하는 마음의 허둥댐에 대하여 평온했고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그런 허둥댐의 덧없음에 대하여 다 돌아간 저녁의 해변처럼 심심해지면, 평상에 모로 누워 아슴아슴 귀를 ..

- 그의 애송詩 2021.10.09

Childhood Remembered

Childhood Remembered 후레쉬맨 시절 안개비 내리던 봄날 '兄'과 나는 한동안 버-스로 통학을 했었다. 가끔씩 타이어가 펑크나서 짬이 생기면 대평리 너른 들판에 시원스레 흔들리는 호밀밭을 보았지... 감히, 대학 일년차가 '모딜리아니'의 누-드 畵集을 겁도없이 가지고 다녔으니! 계면쩍게 '兄'은 말했었지..."겉 표지는 가리울수 없냐"고 나를 바라보았던 그의 시선은 얼토당토 않은 別種으로 보는 듯 했다 수업이 비어있는 날은 어두컴컴한 지하다방에서 음악감상(?)을 했다 Crazy love, If you go away, Top of the world... 아무튼 그 때는 '카펜터즈'의 전성기였다 회색으로 가라앉은 저녁하늘 소리없이 흩어지는 안개비 가로등의 夢幻的 불빛! 연두빛으로 가지를 길게 ..

- 그의 애송詩 202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