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여행자의 詩 114

티벳에서 - 이성선

티벳에서 이성선 ​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꿈꾼다 설산 갠지스강의 발원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생의 끝 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산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 많은 짐을 지고 이 고생이다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산처럼 깊은 울림이 있는 詩다. 지난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 길지도 짧지도 않은 반백의 시간을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살아왔던가 가족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의 부귀영화를 위한 이기적인 욕심으로 그렇게 산 것이 명쾌한 답이다. 넘어질 때마다 부단히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무너진 모래성을 보며 그대로 주저앉아 울 수 만은 없었다. 그렇게 부단히도 살아냈기에 지금의 내가 존..

여인숙에서의 약속 - 이정록

여인숙에서의 약속 이정록 호텔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주머니 탈탈 털어 여인숙에 들었을때, 거기서 내가 솜털 푸른 네콩 꼬투리를 까먹고 싶어 태초처럼 마음 쿵쿵 거릴 때, 슬프게도 나는 농사를 생각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머니와 함께 농사짓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잠 좀 자자고 옆방에서 벽을 찰 때에도 나는 농사가 싫다고 말했다 네가 꼬투리를 붉게 여미고 살풋 잠에 들었을때에도 밭두둑 콩처럼 살기는 싫다고 슬픈 억척이 싫다고 나는 말했다 담장이나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완두콩도 싫고 일 잘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며 며느리 밥그릇에 수북히 콩밥을 푸는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도 몸서리쳐진다고 말했다 여인숙 흐린 불빛 아래에서 나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너와 함께 땅 파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화물 열차..

Flight Of The Soul

당신이 떠난 뒤, 언제나 혼자 물 빠진 해변을 옆으로 걷는 갑각류처럼 늘 나는 혼자였다 당신과 헤어지게 된 이유를 생각한다 나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러나 제일 큰 이유는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우리들의 성향(性向) 차이였다 왜 진작 우리는 자각(自覺)하지 못하고 뒤 늦게, 물 빠진 바다처럼 서로 쓸쓸해 하는 것일까? Awakening ① 자각 ② 사람을 깨닫게 하는 ③ 각성 글 : 윤필립 음악 : Edgar Tuniyants - Flight Of The Soul Edgar Tuniyants - Flight Of The Soul

A Cool Wind Is Blowing

A Cool Wind Is Blowing 바람소리에 유난히 가슴이 설레이는 때가 있다 그 바람소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바람소리의 근원을 찾아가 귀를 기우리고 가슴과 귀를 열고 바람소리를 듣는다 어느날, 문득 바람소리가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들며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고싶은 날, 그곳이 어디든, 바람소리의 근원을 찾아가고 싶어 비행시간이 스무시간이 넘든, 경유지를 몇 군데를 거치든 기어코 그곳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곳이 바로 아르메니아(Armenia)이다. 아르메니아는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 가운데 하나로 서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자카프카지예 지역 남쪽 부분에 위치하며 평균고도가 해발 1,800m에 이르는 산악지대이다. 역사적으로 국경선의 변화가..

12월, 겨울여행 / Cold Winter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눈길을 걸어와 집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살겠다 그렇게 나의 생(生)도 끝나지않고 저토록 이어졌으면. 그동안 죽고싶다던 빈 말은 얼마나 치기어리고 사치스러운 감상이었는지. 추운 산에 묻혀사는 들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물고기들이여 나는 깊은 반성을 하며 이 길을 간다 여행자가 되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먼 산을 바라보는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먼 산, 산등선이에는 늘푸른 나무들이 성벽처럼 서있다 언제부터 자랐는지 장대한 키를 자랑하듯 곧게서서 의연하게 아래를 내려다본다 기둥과 기둥사이로 햇살이 비치면 더 장관이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검은 나무기둥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풍경. 나무는 말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이 있었노라고, 바람에 흔들리고 눈내린 저녁에는 가지가 상하는 ..

12월 (December) 旅潞

해가 쉬 지지않는 역(驛)에 청춘의 등(燈)이 꺼졌다 이제 그간 벌은 것이나 남은 것들 챙겨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해는 지는데 노을은 스러지는데 바람은 부는데 기차는 좀처럼 오지않는다 나는 빈 플렛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가 영원히 오지않길 바라면서 여기는 내가 사는곳에서 먼 낯 선 도시 나는 여행자가 되어 낯 선 곡을 떠돈다 기차가 들어올적마다 몇 명의 승객을 내려놓고 간다 승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역은 다시 조용하다 바람없는 양지바른 벤취에 앉으면 노란 건널목에 쓰인 글씨가 눈에 띈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 Photographer :: Chris Yoon - copywriter :: 윤필립(尹馝粒) - Music :: Benito Lertxundi - Mauieko Bidean ..

첫눈, Clear Day

첫눈이 내렸다. (2018. 11. 24.) 첫눈으로는 최대 적설량 8.8cm로, 지난 1981년 이후 20년만에 가장 많이 내렸다고 한다. 오전 7시부터 대설주의보가 내리며 스마트폰으로 뜬다. 전철을 갈아타며 태능을 거쳐 용마산역에서 내려 구화랑대역까지 갔다. '설국'같은 잔잔한 풍경. 잊고살았던 일본의 홋카이도 설경이 떠오른다. - Photo :: Chris Yoon - Music :: David Darling - Clear Day 나, 이제 설원을 달려 당신에게 돌아갑니다. 여기는 아직 춥습니다. 그러나 조심조심 눈길을 달려 당신이 계신 곳으로 달려갑니다. Tonci Huljic 1. Season 1932 33 2. Spring on The Island 3. Croatian Rhapsody [Wit..

The Journey, December

친구여, 새벽부터 겨울비 내린다. 가방을 챙겨 여행을 떠나자. 이 비가 얼어 눈으로 내리기 전에. 아주 먼 곳으로, 아주 험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여행은 때로는 불편하고 힘든 것, 그러나 우리는 일부러 그렇게 힘든 여행을 선택하자 몽골의 바람부는 벌판이나 험한 산으로 가서 잠을 자며 밤하늘의 별들을 보자 때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로 접어들어 길이 막혀 되돌아나와도 U.S.V.에 가득 저장된 음악으로 차안에서 시간을 보내자 어두운 숲속에서 밤을 보내며 모닥불을 피우고 산짐승을 쫓아가며 차안에서 잠을 자다 문득 잠이깨어 초록별을 보며 우리 서로 얼싸안고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자 멀리 보이는 고성(古城)을 사진찍으려 너와 나는 가방을 열고 온갖 렌즈를 갈아끼우며 하루를 보내자 그러면 가슴에 맺혔던 것..

기형도의 '정거장에서의 충고'

'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