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여행자의 詩 114

어제 - 박정대

2011. 10. 3. Paris, Monmartre 어제 박정대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 자락 낙엽 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선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깍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로맹가리 (Romain Gary) - 박정대

Paris, Rainy day. 백야현상일때는 밤이 되어도 이렇게 어둡지를 않습니다. 로맹 가리 박정대 바람이 분다, 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두 개의 중국인형이 있는 되 마고에 앉아 그대를 생각했어 저녁이었는데, 적막에 관한 아주 길고 느린 필름처럼 파리의 석양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어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석양이 오다니! 나는 환각과 착각 속에서 백야를 봤어 결전의 날, 마침내 나는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그대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전의 날은 왜 또 그렇게 쓸쓸한 적막처럼 내게로 불어왔던 것인지 저녁이었는데, 그대 떠나고 없는 거리는 붐비는 상념처럼 쉽게 어두워지지 않았어 이상하게도 어두워지지 않던 밤 9시의 뤼 뒤 바크에서, 뤼 뒤 바크의 적막 속에서, 뤼 뒤 바크의 적막을 ..

'삶이라는 직업'중에서「약속해줘 구름아 」- 박정대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피운다 삶이라는 직업 커피나무가 자라고 담배연기가 퍼지고 수염이 자란다 흘러가는 구름 나는 그대의 숨결을 채집해 공책 갈피에 넣어둔다 삶이라는 직업 이렇게 피가 순해진 날이면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어 바르셀로나의 공기속에는 소량의 헤로인이 포함되어 있다는데 그걸 마시면 나는 7분 6초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삶이라는 직업 약속해줘 부주키 연주자여 내가 지중해의 푸른 물결로 출렁일때까지 약속해줘 레베티카 가수여 내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한 장의 구름으로 저 허공에 가볍게 흐를 때까지는 내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내가 어떡하든 삶이라는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내 삶의 유리창을 떼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구름아 그대 심장에서 흘러나온 구름들아 밤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