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인사동 산책 7

그때 우리 젊은 날

그때 우리 젊은 날 가끔은 그리울거다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사랑했던 그 때의 내가. 가끔은 그리웠다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사랑했던 그 때의 내가. 인사동의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아뜰리에에서 한적한 오후를 보내며 휴식을 즐긴다. 문득 정말 오래 살았다는 생각. 나, 젊었던 날은 가진것 없었고, 지금보다 더 야위었고, 그래서 두려운게 없었다. 그래서 거침없이 그대를 사랑했고 그대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내 비록 자존심이 있어 혼자 술과 방랑으로 세월을 보내다 늙었으나 가끔은 그대가 그리웠다. 그러나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그대가 그리웠던게 아니라 그대를 사랑했던 그 때의 내가 그리웠던 것이다. 남자는 떠나간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잃어버린 젊은날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는다고 하더니. 지금은 얼굴마저 희미하게 떠..

우리 Africa 로 가자

우리 Africa로 가자 넓은 초원에 흰구름 두둥실 떠가고 사자와 코끼리와 얼룩말들이 무리지어 거니는 곳, 살육투쟁이 벌어질듯 하지만 여기보다 평화로운곳, 어딘가에서 호시탐탐 우리를 표적 삼는것 같지만 이곳처럼 C.C.Camera로 일거일동을 감시당하지는 않는곳, 강한자는 살아남고 약한자는 도태된다지만 이곳처럼 모략과 타협, 치사스러운 청탁이 없고 정정당당한 숫컷끼리의 투쟁을 거쳐 이긴자는 승리의 포효를 외치고 패배한 자는 자인(自認)하며 떠나는곳, 그리하여 내 영역 안에서 먹을만큼만 먹고 나무그늘 아래 단잠을 자며 맘에드는 암컷을 만나면 나의 용맹과 힘을 과시하며 마음껏 쾌락을 누리고 내 유전자를 쏟아부어 또 다른 나를 재탄생시키는곳 그리고...저녁이면 벌판에 서서 해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지나가버린 온..

생각, 念, thought...

생각, 念, thought... 낯 선 곳, 섬으로의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회향(廻向)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돌아와보니 보이는건 모두 부처뿐이요, 세상은 극락이었다 대체 내가 누구를 회향(廻向)하겠다는건가? 인사동엘 나갔다가 또 한분의 부처를 만났다 * 廻向 : 21일 기도 100일 기도 등을 할 때 마지막 날 회향한다고 하는데 자기가 닦은 공덕을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중생이 깨닫도록 한다는 뜻. 생각...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그동안 얼마나 생각다운 생각을 하며 산다고 자만에 빠졌을까? 여기, 80,000개의 생각을 쌓아만든 작품이 있다 80,000개의 생각을 만들어 붙이고, 잇고, 깎고, 갈아내며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작가를 만나 제작과정의 ..

인사동 이야기 - The Journey

어짜피 지나온 날들은 이세상에서 내가 떠돌던 여행들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와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결국 말다툼을 하고 등을 돌리고 문을 밀고 나갔던 날들... 그 또한 고독한 자유였던건 아니었을까? ... 문득 내가 떠나온 초록별 나라가 그립다 지구에 내려오면서 예술이라는 쟝르가 있어 좋았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보는것도 즐거웠지만 내가 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기도 했다 그러나 어수선한 작업실보다 정갈한 전시장이 더 좋았다 저런 전시장, 한 구퉁이에 침대 하나 놓고 살 수 는 없었을까? 문을 밀고 들어와 잠시 생각에 잠겨 기대어 섰다 대나무 몇 그루 서있는 곳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림 몇 점이 걸려있고 그 그림을 비추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랜턴조명 그 한 쪽 귀퉁이에..

인사동 이야기 - Deja Vu

7월도 반이 다가고 장마가 주춤하기는 하나 물젖은 솜같이 습기를 머금은 무덥고 흐린 날 오후, 나는 인사동의 낡은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 푸른은행나무가 서있는 하얀 인사동 거리를 내려다 보고 앉았다 미술관 창앞에서 낡은 서적을 뒤적이며 옛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이 한적하고 권태로움, 이 얼마나 고독한 자유인가 ... 좁게난 유리창 앞에 서서 허리를 펴면 어린시절에 본 흑백영화 속의 풍경들이 흘러간다 일식(日蝕)이었던가? 모니카비티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던 아무도 없던 여름날의 거리 지금 인사동 거리에는 양산을 쓴 여인들과 터질듯한 젊음을 지닌 소녀들이 거리에서 산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지나간다 그 앞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고미술품상점 주인만이 문앞을 나와 맴돌며 긴 여름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A Self - Portrait

구름낀 서울하늘 아래에 앉아 있으면 저 아래를 뛰어다니며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 Siciliano에 맞추어 상대 미녀들을 바꿔가며 가면속의 얼굴을 철저히 감추고 춤을 추며 성욕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앉아있는 이 한적하고 나른한 권태로움, 이 또한 얼마나 고독한 자유인가 ... 느릿느릿 수초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전시실을 걷는다 그림은, 혼자 느릿느릿 걸으며, 혼자 속삭이듯 이야기하며, 아주 오래 보아야 한다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 그리고 그가 택한 표현기법 우리는 좀 더 따뜻하게 그를 이해해 줘야 한다 타임 스퀘어... 분명 타임 스퀘어다 작가는 공들여 하나 하나 線으로 그리고 색을 입혔다 채색톤은 멀리 혹은 가까이 똑같은데 멀리있는것과 가까이 있는것을 크고 작..

인사동 Prelude

- 비가 내리는가?... - 그쳤군, - 구름이 몰려 다니며 간혹 햇빛이 비쳐 이런날 인사동엘 갔다 작가마저 잠시 자리를 비운 전시실에서지독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초현실적인 그들의 작품에서 오는 것이고 외로움은 텅 빈 전시실을 걸을때마다 오래된 나무바닥에서 들리는내 발자욱 소리 때문이다. 이런 장소에 쇼팽의 Prelude in E minor 하나쯤흘려놓으면 덜 무섭고 덜 외로웠을텐데... 자리에 들기 전 귀 솔깃 들은 음악 때문인가 쇼팽이 파리에 밀반입한 소싯적 애인의 뼈로 정교하게 깎았다는 초소형 조각(爪角) ‘ 마주르카’를 찾아 인사동 가게들을 위아래로 훑다가 안개비 자욱한 골목에서 덜컥 깬다. 시계를 본다. 한 시. - 황동규의 에서 一部 발췌 - 어느 전시실 구석진 방 문이 조금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