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인사동 산책

인사동 이야기 - Deja Vu

Chris Yoon 2021. 11. 12. 07:48

 

7월도 반이 다가고

장마가 주춤하기는 하나 물젖은 솜같이 습기를 머금은

무덥고 흐린 날 오후,

나는 인사동의 낡은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

푸른은행나무가 서있는

하얀 인사동 거리를 내려다 보고 앉았다

 

미술관 창앞에서 낡은 서적을 뒤적이며

옛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이 한적하고 권태로움,

이 얼마나 고독한 자유인가 ...

 

 

좁게난 유리창 앞에 서서 허리를 펴면

어린시절에 본 흑백영화 속의 풍경들이 흘러간다

일식(日蝕)이었던가?

모니카비티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던

아무도 없던 여름날의 거리

 

지금 인사동 거리에는 양산을 쓴 여인들과

터질듯한 젊음을 지닌 소녀들이

거리에서 산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지나간다

그 앞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고미술품상점 주인만이

문앞을 나와 맴돌며

긴 여름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느리게 매미가 운다

 

 

 

나도 앉아있기가 지루해지면 복도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것을 되풀이하며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가 그랬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서 손과 도구를 쓸 수 있다고

그 손을 안 쓰고 조각도를 놓은지도 벌써 수십년이 지났다

언젠가는 이끼낀 고향에 돌아가려했는데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생각해보면 나의 젊은날들은

조각도를 손에서 내려놓고부터

사막을 뛰어다닌,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조각가를 만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작가

김두성...

온통 그는 흙빛갈이다

그의 옷도,

그의 얼굴도,

그의 콧수염도,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황토마당에 소나기가 지나간후

비릿하게 풍겨져오는

건강하고 오염되지않은 흙냄새를 맡았다

 

 

 

Deja Vu...

그의 이번 전시회 명칭이다

그의 Post Card 맨 아래에 적혀있는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꽃은 대지에 뿌리 내리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더군요'라는 글이

가슴을 훑으며 지나간다

사양마저도 아름답게 할 줄 아는 남자,

그 무쇠같은 생김새로 어찌 그런 음지식물같은 표현을 했을까?

 

그래서 일까?

그의 작품은 온통 폐목재와 버려진 철판조각(금속)이다

 

 

 

그와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그는 격앙되지 않고 침착한 어조로

관람객들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자연에 삽질을 할때,

생명들은 갈 곳이 없고 지구는 황폐화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벽에 걸린 회화같은 조각들은

물고기를 주제로 한것들이 많다

지구환경연구가를 겸한 그의 작품세계를 엿본다

 

 

Deja Vu

언젠가 한번 보았던 느낌,

그랬다

성북동의 좁은골목, 바로 길가에 붙은 좁은방에서

밤새도록 또닥거리며 나무를 다듬던 스물네살적의 거억

 

나는 오늘,

낯선 그의 얼굴에서 문득 Deja Vu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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