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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출처 - 이병률

산에서 사랑을 파낸다 새 떼처럼 마음이 운다 사랑에게 손을 뻗어 손을 달라고 했다 눈에 파묻힌 사랑은 손에 뿌리를 꼭 쥐고 있었다 사랑은 손을 내미는 대신 일생에 단 한 번 여름이 올 것이라 했다 그 여름이 오면 대륙 깊숙이 이 뿌리를 심어달라 했다 그 뿌리 속에 최선이 들어 있다고 했다 치밀한 여름이 왔다 여름의 조각들이 대륙을 붙들지 못해서 사랑은 뿌리가 드러났다 한사코 표식을 드러내겠다고 겹겹의 세계 바깥으로 나오고 만 사랑의 뿌리를 파낸다? 사랑은 뿌리여서 퍼내야 한다 뿌리가 번지고 번져서 파낼 수 없게 되어서 다시 되묻는다 온몸에 열이 펄펄 끓기 시작한다 사랑이 끝나면 산 하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퍼다 나른 크기의 산 하나 생겨난다 산 하나를 다 파내거나 산 하나를 쓰..

- 그의 애송詩 2022.12.28

Merry Chrismas for you.

시골길 작은 웅덩이마다 살얼음이 끼어 있고 숲은 멀리 있다. 농장 집 개들이 인기척에 놀라 사납게 짖어댄다. 개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저 늑대의 종족들을 가둔 어리석음이 죄악이다 빠르고 민첩한 것들이 사라진 숲, 잔광(殘光)을 받으며 드러나는 가난한 살림, 이끼들이 고사한 나무 등걸 위에 들러붙어 있다. 나는 좀 더 걸어 숲속으로 들어간다. 물가에 집을 꾸리고 살던 시절은 이미 옛날이다. 감찰나무 아래에선 상심들이 바스락댄다. 숲속에서 위층 집 사람을 생각한다. 오후 네 시마다 피리를 부는 사람, 음들의 혼돈 속에서 바른 음을 찾아 세우는 그는 서른 몇 해 전에 내가 알던 사람, 그를 만난 것도 이미 옛날이다. 누군가 천지간의 빛들을 거둬 갈 무렵 내 그림자와 함께 나무들의 그림자들이 길어진다. ..

- 그의 Life story 2022.12.24

크리스마스 케익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 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동안 항암치료를 받고나..

- 그의 Life story 2022.12.22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반복된다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정말싫다. 밤새 라디오를 들으며 잠깐 어둠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보면 10시, 새벽 1시, 새벽 3시, 다섯시... 어느새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일어나야된다. 그리고 또 하루를 열고 시작해야한다. 무엇이던지 아침식사로 밤새 허기를 메꾸고 정확히 30분후에는 병원에서 조제해준 아침약을 골라내어 복용해야한다. 그러면 오전 일과는 끝이난다. 작은 전기 스토브를 켜고 앉아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간밤의 소식을 검색하고 냉장고를 열고 약간의 간식을 챙긴다. 쵸코렛이나 케익 한 조각, 그리고 컴퓨터앞에 앉아 몇 줄의 글을 쓰고 사진을 손질한다. 커피를 내려서 마시며 지난날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반추(反芻 :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고 생각하는 것 /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참으로..

- 그의 獨白 2022.12.19

나무와 의자

언제부터 였을까? 내 가슴속에 빈 의자 하나 있었다 누군가 걸어와 앉아서 편히 쉬며 독백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있기를 기다렸다. 겨울눈이 녹고 봄, 여름, 나무는 잎이 무성해지고 새들이 날아왔다 새들은 나무가지에 앉아 노래를 하며 쉬다가 갔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 '그'는 정작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 들녁의 잔디도 황금빛으로 변하고 나무도 푸르른 잎에서 차츰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겨울이 오기전에 '그'는 오지않는가? 다시 겨울이 왔다. 그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 그러나 나는 아직 기다린다. 나무와 의자 / 윤필립 -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 몽촌토성에서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이곳은 옛 백제사람들이 살던 터전이었다. 유적도 발굴되고 언덕인줄 알았던 토..

- 그의 獨白 2022.12.15

눈 내리는 날

아침 8시 아내와 집을 나선다. 병원으로 가는 날, 아침에 공복전에 채혈을 하여 조사의뢰를 하고 1시간여를 기다려 검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내분비내과 김두만교수, 혈액종양내과 송헌호교수의 진료를 받는다. - 당뇨도 생각만큼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갑상선도 아밀로이드때문에 생긴증세인데 많이 좋아졌습니다. - 김두만교수 - 백혈구도 많이 줄었군요. 일주일간 편히 쉬시고 2주후에 뵙겠습니다. - 송헌호 돌아오는 길. 잠실 윤경제한의원에 들려 윤경제원장을 만나다. 나의 혈액암을 알아보고 암시를 줬던 분. - 당신, 기분나빠. 어디서 이런 병을 옮아가지고와서 지금 문제가 심각해. 나는 그 길로 병원으로 가서 아밀로이드종을 병명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반, 다시 윤경제원장을 만났다. 윤경제원장과 그동..

- 그의 Life story 2022.12.13

노인들의 삶에 나는 통곡한다.

밤새 불면에 시달리다가 7시에 눈을 뜬다. 8:00부터 9:00까지 병원으로 가서 공복 채혈검사에 X-Lay 촬영이 있는 날. 그리고 한 시간여 검사결과를 기다렸다가 검사가 나오면 송헌호교수의 진료를 하고 와야한다. 또 내일은 비뇨의학과 양재열교수와 8:30부터 9:00까지 진료가 있는 날이다. 아침부터 머리가 무겁고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삶의 의욕이 없다. 7시50분 아내와 집을나와 차를 운전하여 강동성심병원으로 향한다. 나는 나대로의 머리가 복잡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생각에 잠겨있다. 아내역시 친구의 암진단으로 슬픔에 잠겨있다. 아내에게는 결혼전부터 함께 어울려다니던 친구들이 4명이 있다. 그 친구중 한명이 제주에 있는 친구로 암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시기를 놓쳐 온몸에 전이가 되어 집에서 죽음만 기..

- 그의 Life story 2022.12.06

Autumn Life III

저것이 가을인가 묻는다. 파랗고 있는 것을, 싸늘하고 있는 것을, 두 귀가 아프고 있는 것을. 가을인가 묻는다. 기막히고 있고 눈부시고 있고 붉고도 있는 저것이 가을인가 묻는다 가난하고 친하고 떨리고 있는 저것이 가을인가 묻는다. 어쩌면 틀리고 있는 저것이 그래서 맞으려고 있는 저것이 더 맞으려고 있는 저것에게 가을인가 묻는다. 위험허고 천만하고 외롭고도 있는 저것을 가을인가 묻는다. 저것이 저것에게 저것을 오 저것으로 부르는 저것에게 가을인가 묻는다. 무안하고 무색하고 뚝 떨어지고 있는 저것이. 저것이 가을인가? - 김언 밤새 음악을 들으며 잠결에 어렴풋이 시계를 보면 2시간쯤씩 흘러가고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수면제 없이도 많이 잘 자는 편이다. 기진맥진 하듯이 누워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이면..

- 그의 Life story 2022.12.05

Autumn Life II

11월도 이제 마지막 장을 덮을때가 되었다. 노란색의 향연, 붉은 색의 향연... 우리는 그래도 하루밤만 지나고나면 훌쩍 몰라보게 잎을 떨구고난 헬쓱한 나무들과 바람이 불면 난무하며 떨어지는 낙엽들속에 행복을 느꼈다.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질때 우리는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고 했다. 정신없이 아프고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해보라. 허무를 느낄 틈이 어디 있는가! 저 무성하던 잎이 진 나무들을 보아라. 얼마나 쓸쓸한가! 그래도 나무들은 쓸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 잎마저 다 떨어져도 그대로 서있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듯하다. 마치 모두 떠날곳으로 떠나보내고 혼자남은 노인같지않은가! 노인은 그래도 외로움을, 쓸쓸함을 내색하지않는다. 그러나 새벽녁이면 혼자 일어나 앉아 눈물짓는다. 몸이 아..

- 그의 Life story 202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