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국내여행 290

가을, 강화를 읽다 - 장화리 해넘이 마을 II

섬이 보고싶어 섬으로 왔는데 섬속에 또 섬이있다 섬안에 섬이있고 섬밖에 또 섬이 있다 내가 도망치면 섬이 따라오고 다가가면 또 섬이 달아난다 섬은 너와 나의 간격만큼 딱 그자리에 떠있다 섬은 우리만큼 가깝다, 멀다 섬 하나, 그대로 있는데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볼 수 없다. 갈때마다 다른 섬. 계절과 날씨와 바람과 조수의 차이로 같은 풍광을 볼 수 없는 곳이다. 만일 화가가 그림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다음에 가서 그리려하면 달라진 풍경에 당황하는 곳이다. 장화리의 해넘이는 자연의 변화를 실감케하는 곳이다. 2014년 7월 30일(수), CNN이 발표한 우리나라 100경 중에 하나가 강화도 장화리 갯펄이다. 동막해변을 비롯해 장화리까지 이어지는 강화 남서단의 갯펄은 '세계 4대 갯펄' 중 하나로 영국의 갯벌보..

가을, 강화를 읽다 - 장화리 해넘이 마을 I

넘어가는 해가 지나가며 사랑했을 여름내 우거졌던 저 쑥대밭 이제 사랑을 잃었다 그뿐이다, 더 이상 이승에서 무얼 바라랴 감히 손 닿을 수 없는 곳의 그를 사랑했던 추억 하나, 메마른 가슴에 안고 가야지 넘어가는 해가 제일 아름답다는 해넘이 마을 그래서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왔다 막내가 뒤쳐지며 말한다 - 아버지, 조금 천천이 가요. 다리가 아파요. - 얘야, 힘내라. 다왔다. 바로 저기 보이는 섬이 우리가 내릴 곳이란다. * 오늘은 올해가 끝나는 12월의 첫날입니다. 돌이켜보니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철새들처럼 한 해를 정리하고 2021년을 향해 좀 더 나은곳으로 옮겨가야겠죠. 그리스민요중에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의 노래로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올거야(Aspri..

가을, 강화를 읽다 - 보문사 (普門寺) II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 원망 말고 애처롭기만 한 사랑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기뻐할 줄 알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할 것입니다. - 강화 보문사의 石碑文에서 -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

가을, 강화를 읽다 - 보문사 (普門寺) I

강화도 보문사의 은행나무 올해도 노랗게 물들었다. 서해바다 낙조 내려다보며 어언 나이 먹었다 은행나무는 서로 마주보아야 열매를 맺는다는데 바다가 가로 막아 꽃가루 전해줄 길 없었나니... 나이 든 동정(童貞) 은행나무 올해도 애닯다. 강화도의 보문사(普門寺)는 유명한 것이 세가지 있다. 헉헉거리며 가파른 길을 올라 경내에 오르면 가슴이 탁 터지는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경내를 지나 수백개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을 뒤로한 산봉우리의 자연암석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坐像)이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절 마당 아래 뜰에 서있는 해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이다. 해마다 노란잎을 우수수 쏟아내리며 우수에 젖은듯 서있는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않는 숫은행나무이다. 은행나무는 숫 나무와 암나무 두 ..

가을, 강화를 읽다 - 전등사 III

햇살 잘 들고 바람 지나다니는 길의 장항아리들, 지난해 가을부터 스님들이 메주쑤고, 이른 봄날 천일염풀어 항아리에 붓고 메주넣어 여름내 뚜껑열고 햇빛과 바람 집어넣으며 담은 사찰 장맛은 어떨까? 스님, 제게도 장맛 한번 보시(布施) 하시죠.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강화도에서 제일 큰 절이라한다. 그런데도 장독대는 그리 크지가 않다. 수행하시는 스님이 몇 분이나 계신지, 탬플스테이를하는 수행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나 생각했던 만큼 장독의 규모나 항아리의 숫자가 많지를 않아 내심 놀랐다. 그것도 나의 과욕된 상상이었는지...? 그런데... 장독대 앞 오솔길을 걸어 돌층계를 밟고 축대 아래로 내려오다 또 한번 놀랐다. 장독대 아래가 해우소 [解憂所]라니...? 해우소(解憂所)란 바로 ..

가을, 강화를 읽다 - 전등사 II

눈이라도 금방 쏟아질듯한 회색빛 하늘 산까마귀 한 마리 날고있다 그 아래 푸르던 잎 다 떨구고 이제야 자신의 가지를 모두 보여주는 나무 저토록 겸허하였구나, 나무여. 산사에 가면 우리는 고목을 본다. 수명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정확치는 않아도 미루어 짐작컨데 족히 백년은 넘지 않았을까? 나무도 오래 살다보니 궆고, 휘고, 상처가 난곳은 메꾸어지고, 심지어는 주사까지 맞고있다. 사람과 똑 같다. 나는 산사의 나무를 볼 때마다 가슴속으로 한번씩 쓸어주고 안아준다. 애틋한 동질감이다. 그러나 그런 몰골로 서있다가 나무도 언젠가는 끝내 자신의 명(命)을 다한다. 절밥 삼년이면 절집개도 염불을 한다는데... 하물며 절이 지어질때부터, 아니... 절이 지어지기 전부터 서있었을 나무. 그 나무는 죽어서도 절을 지키..

가을, 강화를 읽다 - 전등사 I

가을이 깊어간다 만추의 뜰을 스님 둘이 걷는다 그래, 경전[經典]을 읽으며 수행을 하던 스님도 가을에는 말벗이 필요하다. 가을에는 누구나가 다 외롭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도 시들하면 수행을 한다. 그 모든것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나 역시도 마음과 몸이 갈래갈래 찢어졌다. 가을이 깊어가는 만추의 강화, 전등사를 찾았다. 고목위에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은 무슨 소원을 저리도 많이 빌고 간 흔적들일까?... 대웅전 앞에서 몇 장 안남은 늙은 은행나무를 바라보다가 경내를 걷고있는 스님들을 보았다. 그들도 나와같이 마음을 다스리다, 못 다스리다... 때로는 서성대고, 끝내는 도반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 때로는 속으로 통곡도 하겠지. 인간들은 모두 혼자다. 결국 모두들 혼..

연천 '호로고루 성지' V

이제 돌아 가야겠다. 해가 지기전에, 연천벌에 해가 떨어지기전에. 저 해바라기 꽃잎들이 바람에 지기전에. 어찌 호로고루 성지(城地)의 恨을 내가 모두 담아갈 수야 있겠나 좀 더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 황혼의 임진강이 검은 강으로 흐르기 전에. 나는 이틀에 걸쳐 연천 호로고루 성지를 다녀왔다. 몇 천평의 해바라기 밭이 펼쳐진 사진을 찍으면서 고구려의 역사 뒤안길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내가 알겠는가. 그 역사속에 숨겨진 恨의 세월을. 미흡하나마 이틀간의 여정을 끝마친다. - Photo / Copy : Chris Yoon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盧古壘) 군사분계선에서 꽤 가까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임진강변에는 전망 좋은 성터 하나가 남아 있다. 고구려시대 군사 시설인 호로고루성(사적 제 ..

연천 '호로고루 성지' IV

두 개의 길이 있다. 해바라기 밭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길이 갈라진다 마치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같이 생긴 길이다. 어느 길로 가야할까? 나는 대학 졸업반에 접어들면서 나의 진로에 대해 무척이나 망서렸고, 고민했고, 두려워했었다. 타고난 기질을 택하여 무턱대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와는 또 다른 신중한 선택이었다. 가난이 두려웠다. 고생을 면하기위해 안일하고 변화가 없는 생활이라도 좀 더 안전하고 노후까지 보장을 받는 직업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길은 평생 그 날이 그 날이고 늘 고여있는 늪같은 길이었다. 또 하나의 길은 바람같고, 소낙비같고, 천둥이 일며 낙뢰가 치는 길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리챠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가방에 꽂고 다녔다..

연천 '호로고루 성지' III

'너희들은 죄가 없는가? 잘 못이 없는 者들은 모두 이 者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자 모두 돌을 던지고 등을 돌려 돌아섰다. 그때, 한 노인이 돌을 던지지도, 돌아서지도 않고 나즉하게,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며 억제 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을가졌고 그래서 누구나... 비밀스럽게 행합니다. 단지 요행히도 남모르게 숨어 하며 눈에 띄지 않았을 뿐입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않고 그 상황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래, 자유분방한건 죄가 아냐. 이승에서 못해보고 저승으로 가면 두고두고 후회하지. 경험이란 중요한거야. 지나가는 바람이 내 귓전에 속삭인다. - Photo / 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