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쟉크 프레베르의 샹송같은 날 I - Equus를 숭배하던 소년들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에쿠우스를 숭배하던 소년들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광대뼈 아래가 푹 꺼져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얼굴. 그는 시종일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는 를 숭배했었다. ‘에쿠우스’ 라는 이름에 매료되었고 바닷가에서 처음 그 말을 타보았다. 밤마다 몰래 말을 끌고 나가 갈기의 체취를 맡으며 끓어오르며 넘쳐나는 性을 달리는 말과 교감했다. 밤안개 속에서 소년과 말은 울부짖었다. 그에게 에쿠우스는 신(神)이었다. 소년이 소녀와의 섹스를 하기위해 에쿠우스의 신전에 숨어들었을 때. 마구간 문을 잠궈도, 눈을 감아도 소년의 말초신경들은 섬광처럼 번쩍이며 말(馬)이 자신의 섹스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환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의 불경에 경고를 보내는 신의 모습은 소년을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양평 용문사 - 내마음에 풍경[風磬]달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고통은 어디서 오느냐고 내안의 고통에게 물었지 내안의 어둔 그늘 속에 숨어 가끔씩 얼굴을 내미는 고통에게 슬픔은 어디서 오느냐고 내안의 슬픔에게 물었지 내안 마음의 문 뒤에 숨어 가끔씩 눈물을 비치는 슬픔에게 고통은 또 다른 사랑이냐고 내안의 아픔들이 물었지 때때로 내안에서 걸어나와 다른데로 이사가는 옛 고통에게 슬픔은 또 다른 축복이냐고 지나는 바람에게 물었지만 네안에 대답있다. 대답있다고 말하네 대웅전 처마끝 풍경[風磬]에 물고기가 매달려 바람이 스칠적마다 소리를 낸다 염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오는 스님에게 물었다 - 왜 풍경에 물고기를 달았지요? 합장을 하며 주지스님 대답한다 - 물고기는 잠을 잘때도 눈을 뜨고 자지요. 그래서 세상만사 항상 깨어있으라고 물고기를 달았답니..

Photo Poem VI 感性旅行, - 전북 부안 내소사(來蘇寺)

능가산(楞伽山) 내소사(來蘇寺) 대웅전 앞에서 鐸鳴鐘落又竹비 탁명종락우죽비 鳳飛銀山鐵城外 봉비은산철성외 若人聞我喜消息 약인문아희소식 會僧堂裡滿鉢供 회승당리만발공 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 어울리니 은빛 산속에 봉황새가 날아드네 누가 내게 무슨 기쁜일 있나묻는다면 당우에서 스님들께 바루 가득 공양 올린다고 하리.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楞伽山 來蘇寺 大雄寶殿. 보물 제291호/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는 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있다. 높게 쌓은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다포 팔작붕으로 1633년 건립되었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5출목, 공포는 살미끝이 심한 앙서형이고 살미에 연봉형이 조각되었고, 정면창호는 분합+사분합+분합, 창호에는 정교하게 연화, 국화,모..

Photo Poem V - 感性旅行, 전북 변산반도 격포

겨울 바다 윤필립 겨울바다에는 고통이 있다 겨울바다에는 아픈 흔적들이 남아있다 외롭게 부표하는 낯 익은 서러움들 그건 젊은날의 흔적들이다 겨울바다엘 힘들게 찾아가면 바다는 더 고통을 줄 뿐이다 바다도 아파한다 겨울바다가 더 푸른건 바위에 부딪쳐 멍이든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는가 겨울바다같이 풀리지않는 유년의 기억들을 벗어나려 애쓰다 끝내 그 기억들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돌아가며 한맺힌 포효를 한다 이제 떠나야한다 이승도 나에겐 오래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 겨울바다에 누워 실컨 소리라도 쳤으면 그 서러움 안고 나, 다시 겨울바다를 떠나간다 Sad Heart - 한 상처가 다른 상처에게 손수건을 내민다 강문리 횟집에서 만나다 권현형 슬픔이 쌓여 바다가 되는가 끝도 없이 하얗게 욕망을 게워내..

Photo Poem IV - 感性旅行, - 변산반도 채석강에서

Photo Poem 가을바다, 가을나그네 서부관광도로를 가다가 눈처럼 하얀 바다를 보았다. 지도에도 없는 이 바다는 중심부에서 가장자리로 끝없이 물결을 밀어내고 있었다. 나의 차도 물결에 휩쓸렸다. 나의 차는 작은 잠수함이 되어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었다. 신비한 음악 소리가 들리고 봄부터 가을까지 쏟아진 햇빛과 별빛이 고운 모래로 쌓여 현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바람의 집을 보았다. 큰 동굴 속에 바람은 살고 있었다. 암만해도 내가 그 집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벌떼처럼 달려나온 바람이 순식간에 온 천지를 춤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곳을 빠져 나왔는지 모른다. 그 곳이 바로 이어도였을까? 몽롱한 눈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권재효의 ‘억새꽃’ 전..

Photo Poem III - 感性旅行, 長城 白羊寺 / 최금진의 '단풍의 사상'

절제된 참선의 광기가 산속에 절을 세웠겠죠? 내가 절간에 그려진 단청의 울긋불긋함에 대해 말할 때 동행하는 스님은 너무 젊어서 비범한 구석도 없이 그저 웃는다 한무리의 시든 단풍이 뻘건 각혈을 토하며 계곡에 엎드려 있을 때 등 탁탁 쳐주며 그만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해줄 만한 깨달음이 없으므로 나도 그만 웃는다 마을 저 아래에서 폐비닐들이 바람을 타고 올라오고 해발 800고지까지 떠오는 힘에 대해 나는 아무 말 못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는 것과 스님들의 빡빡 깎은 머리는 비유적으로 같은 건가요? 나보다 열살은 젊은 스님의 웃음은 나보다 열살은 행복할까 행복한 건 죄가 아닐까, 단전에 힘을 모으고 아랫도리를 단련하는 불상들은 연꽃을 깔고 앉아 있고 연꽃은 만개한 여성의 성기와 유사하죠, 스님들도 자위..

Photo Poem II - 感性旅行, 長城 白羊寺

어느 곳에선 야행의 밤짐승 먹이찾아 눈 밝힌채 능선 몇개라도 넘었겠지 다른 곳에선 목말라 샘터를 지나는 고라니 하늘보며 선한 눈망울 속에 별빛도 들여 놓았을거야 밤을 세워 들려준 별들의 노래 때문에 홀로 있어도 슬프지 않았을 느티나무 잎으로 어둠이 교차하고 사각사각 쏴한 새벽 바람이 분다 새털같은 구름이 멈춤없이 스치고 어둠에 감췄던 산그리메 한눈에 들어오면 그 아래 펼쳐진 파도치는 구름의 바다 거기 멍하니 서 있는 것만으로 감당 못 할 새벽풍경 Photo / Poem 촬영장소 : 전남 장성군 백양사 입구에서 Chris Yoon 가슴에 묵은 상처들이 찬바람만 불면 도진다 감당 못 할 그 추억들은 가을만 오면 찾아오는 고질병.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을 떠나자 가는 길, 물소리 들리는 산사가 있으면 하루밤..

Photo Poem I - 바다, 그 아픈 흔적

겨울바다, 그 아픈 흔적 대포항 방파제 함성호 바다는 보이지 않고 별만 보인다 나는 또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망했는데도 왜, 끝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파도는 병신, 너는 병신, 하며 대포항 방파제를 돌아서 나가고 있다 어차피 내 청춘의 실패는 이십세기와 같이 가 버렸다 나는 안다 기껏해야 몇 개의 별빛을 쥐고 돌아온 길을 다시 가야 하는 이 되풀이되는 생의 곡조를 어디 한 걸음이라도헛딛을 수조차 없으리라 (알렉산더가 인도에서 세계의 끝을 보았을 때 그는 죽었다) 밤의 방파제 깊은 구멍 속에서 들려 오는 끄으는 쇠사슬 소리 나는 언제나 헛된 희망만을 가지고 이 별빛 많은 바다를 돌았섰단 말인가? 등대, 저 등대까지만 더 나가자 별이여, 파도여 언제나 그랬듯이 돌아가는 길은 또 처음 걷는 길처럼 쇠미역에 ..

수원/1회 33초 포켓영화제 (33 Seconds Pocket Film Festival)|

스마트폰으로 찍는 제1회 33초 포켓영화제 (33 Seconds Pocket Film Festival) 2014.10.01. P.M. 6:30에 서울 역삼동의 라마다르네상스 호텔 4층에서 그 전야제라 할 수 있는 33초 포켓영화제 (33 Seconds Pocket Film Festival)후원회가 열렸다 그 사진 몇 장을 소개한다 매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꽁트 영화제 같은 짧은 영화제가 많이 있지만 '33초 포켓 영화제(33 Seconds Pocket Film Festival)'처럼 확실한 주제 하에 연령층에 관계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응모할 수 있는 영화제는 흔치 않다. 그래서 신선함과 리얼함, 또한 기대감을 준다. 이제 현대인들 누구나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 ..

수원 / 正祖大王의 발자취를 찾아서

정조대왕(이산)은 1752년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혜빈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산, 1759년 8세의 나이로 세손에 책봉되었다. 1762년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자 횡사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에 양적되어 제왕 수업에 들어갔다. 1775년 82세로 연로한 영조가 대리청정을 시켰고 이듬해 3월 영조가 죽자 그는 25세 나이로 조선 제22대 왕에 즉위했다. 역대의 왕들과는 달리 文과 武를 겸한 훌륭한 왕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홍국등의 도움을 받으며 가까스로 목숨을 지켜나갔고`개유'라는 도서실을 마련하여 청나라 건륭문화에 마음을 기울이며 학문 연마에 힘썼다. 그는 양반,중인,서얼 ,평민층,모두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집약시킨 조선시대 최대의 문예 부흥기를 이루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