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560

뮤직박스 - 류시화

男子... 뮤직박스 속의 삐에로 뮤직박스 류시화 나 어렸을 때 뮤직박스 하나를 갖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착했던 것 유리상자 안의 인형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뮤직박스 나 잠이 들면 세상 전체가 뮤직박스가 되어 별자리들의 음악에 맞춰 끝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슬픔을 잊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뮤직박스는 어느새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집착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었다 당신이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뮤직박스 속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신은 그 뮤직박스를 버렸다 아무도 태엽을 감아 주는 이 없이 춤을 추던 그 동작 ..

- 그의 애송詩 2021.10.11

폼페이 여자 - 황진성

2013. 3. 19. 폼페이 여자 황진성 화려한 대리석 천장 사방에 그려진 춘화여자의 집 돌침대에 누워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이천 년 전 그녀는 1000℃ 욕정으로 불타는 사내 칼자국 채 아물지 못한 등에서 떨어지는 땀방울 젖가슴의 골을 타고 흐느끼는 물길로 만났을까 검투장에서 다섯 번 승리하면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바다의 가슴팍에 수만 번 칼을 꽂은 사내 검투사의 성난 무기도 몸속 깊이 가두어 두고 사내처럼 당당하게 세금을 내리라 언젠가 검은 노예가 모는 마차 타고 로마 귀족 등껍질을 밟고 달려 마르세유까지 '나는 2아스로 당신의 것배려가 있는 메난델은 2아스 여자노예 로가스는 8아스'* 돌침대 닳도록 밤낮없이 일하다 메난델과 로가스 연리지로 뒤엉킨 날 한순간 베수비오 화석 안에 새겨진..

두개의 바퀴 - 김행숙

2013. 3. 13. 두개의 바퀴 김행숙 두 개의 바퀴를 쓰러뜨리지 않고 계속 굴리기 위해 모든 자전거 도로는 거대한 검은 허파로 빨려 들어간다. 뜨거운 연기를 토하는 산이 보이는 도시에서 살고 있어. 몇 백 년 동안. 옆서 한 장의 존재 이유. 이쪽 빌딩에서 저쪽 빌딩으로 날아가는 새와 같지 않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생수와 담배와 콘돔을 샀다. 자전거 도둑이 없는 도시에서 살고 있어. 그까짓 자전거를 타고 네가 영원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주할 순 없지. 너는 뭔가를 꼭 붙잡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것들. 빙빙 도는 두 개의 바퀴처럼. 한 개의 머리에 두 개의 귀가 존재하는 이유. 네가 기울어질 때에도 쏟아지지 않는 것들. 검은 숲의 입구가 많이 존재하는 이유. 가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