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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멀미 - 김충규

새가 숨어 우는 줄 알았는데 나무에 핀 꽃들이 울고 있었다 화병에 꽂으려고 가지를 꺾으려다가 그 마음을 뚝 꺾어버렸다 피 흘리지 않는 마음, 버릴 데가 없다 나무의 그늘에 앉아 꽃 냄새를 맡았다 마음속엔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곳이 여럿 있었다 내 몸속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파놓은 자리, 오랜 시간과 함께 응어리처럼 굳어버린 자국들 그 자국들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때 깊고 아린 한숨만 쏟아져 나왔다 꽃 냄새를 맡은 새의 울음에선 순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힘으로 새는 사나흘쯤 굶어도 어지러워하지 않고 뻑뻑한 하늘의 밀도를 견뎌내며 전진할 것이다 왜 나는 꽃 냄새를 맡고 어지러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늘에 누워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구름이 이동하고 있었다 구름이 머물렀던 자리가 움푹 패여, 그 자리에..

- 그의 애송詩 2021.10.11

날개를 위한 詩 - 유하

날개를 위한 詩 바람아 기억하는가 한때 나는 날개를 갖고 있었네 허공을 날며 사랑을 나누다 절정의 순간 몸이 터져 죽어버리는 숫개미의 날개를 그러나 어느 날, 내 날갯짓의 에너지였던 사랑은 태양의 지평선을 따라 사라지고 난 지금 암흑의 대지에 갇혀 떠나간 사랑에 대해 쓰네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 날개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생의 나머지를 견디네 날개를 위한 詩 / 유하

- 그의 애송詩 2021.10.11

봄날은 간다 - 김종철

2013. 4. 25.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김종철의 중에서 발췌 벚꽃이 진다. 벚꽃은 피어 있을때보다 질때에 더 아름답다 하루종일 지는 꽃잎을 보며 서있었다 바로 저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때, 떠나는것을 서러워하지 않는 처연함 나 또한 준비가 되었는가, 죽는 순간에도 구차하게 명줄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 그 의연함... Chris Nicolas

- 그의 애송詩 202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