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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詩 series 13 / 길에서 길까지 - 최금진

2014. 4. 7. 길에서 길까지 최금진 아홉 살 땐가, 재가한 엄마를 찾아 가출한 적이 있었다 한번도 와 본적 없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오줌을 싸고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길치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땐 한 여자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서 막차를 놓치고 대신 잭나이프와 장미 가시를 얻었다 무허가 우리집이 헐리고, 교회 종소리가 공중에서 무너져내리고 나는 골목마다 뻗어나간 길들을 모두 묶어 나무에 밧줄처럼 걸고 거기에 내 가느다란 목을 동여맸다 노랗게 익은 길 하나가 툭, 하고 끊어졌고 나는 어두운 소나무밭에서 어둠의 뿔 끝에 걸린 뾰족한 달을 보았다 대학에 떨어지고 나는 온몸에 이끼가 끼어 여인숙에 누워 있었다 손 안에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길 하나를 태워 물었다 미로 속에 쥐를..

- 그의 애송詩 2021.10.13

花詩 series 12 / 파적 [破寂] - 류 근

2014. 4. 5. 파적 [破寂] 류 근 봄날이던가 소쇄원 광풍각 대청에 누워 계곡물 소리로 늦은 숙취를 헹구고 있는데 그 아래 사람 사는 별채에서 한 노파가 달려오며 에잇, 오살할 놈아 거기가 한뎃놈 자빠지는 덴 줄 아냐 소리치는 서슬에 술이 확 깨서 대숲 바람 소리는 듣지도 못한 채 신발 들고 한뎃길로 광풍광풍,도망쳐 내려왔다 '류근' 시집 『상처적 체질』; 중에. * 파적 [破寂] / 적막을 깨뜨린다는 뜻. * 담양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아 조성한 곳으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 배롱나무 등을 심어..

- 그의 애송詩 2021.10.13

花詩 series 11 / 벚꽃 지면서 날아 오르다

2014. 4. 4. 벚꽃 지면서 날아 오르다 윤필립 벚꽃이 피는가 했더니 어느새 진다. 일찍 왔다 가는 속절없는 슬픈 운명에도 얼굴 붉히지않고 가는 저 창백한 아름다움. 바로 저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때, 떠나는것을 서러워하지 않는 저 처연함 그래서 벚꽃은 피어 있을때보다 질때가 더 아름답다 하루종일 지는 꽃잎을 보며 빗 속에 서있었다 나 또한 준비가 되었는가, 죽는 순간에도 구차하게 명줄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 저 의연함이...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뒤늦은 편지 유하 늘상 길 위에서 흠뻑 비를 맞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났더라면, 매양 한 발씩 마음이 늦는 게 탈입니다 사랑하는 데 지치지 말라는 당신의 음성도 내가 마음을 일으켰을 땐 이미 그곳에 없었습니다 벚꽃으로 만개한 봄날의 ..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