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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빛나는 너의 젖빛 - 김선우

2015. 3. 9. Winter's Tale 그러니까 오리온 자리의 삼태성이 별안간 젖꼭지처럼 보인 날이다 하늘을 쳐다보다 입안에 단침이 고인 날이 거기에 입술을 대고 싶어 배꼽 밑이 찌르르해진 날이다 그러니까 오리온이라는 힘센 사나이의 중심 움푹 팬 상처처럼 고인 허공에서 유선이 곱게 발달한 젖가슴을 느낀 날이다 천체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시선으로 살맛 달큰한 비린내가 초유처럼 흘러든 날이다 은하는 깊은 곳으로 찔린 듯 쏟아지고 지구인 내 취향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가는 것인지 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너의 별자리들마다 모조리 양성구유인 소한(小寒) 날이다 - 김선우의 '반짝, 빛나는 너의 젖빛' 全文

- 그의 애송詩 2021.10.13

구름의 노래 - 유장균

遭難者 a sufferer 한 생애의 욕망과 좌절은 결국 여기에 와서야 조용히 만나 갈등을 풀었다 덜컥 관이 멈추고 따라 들어갔던 시선들이 하릴없이 다시 이승으로 되돌아와서 비로소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풀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산이 몇 번 꿈틀꿈틀 잠자리를 흔들다가 편안한 자세로 돌아누워 큰 숨을 토한다. 서둘러 흙을 덮어 주고 우리는 돌아섰다. 세상은 이제 모를 것이다. 그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다시 깨우지도 못할 것이다. 울먹울먹하던 구름도 산너머로 사라지고 난데없이 산제비 한 마리 앞을 가로세로 가르며 날다가 아주 가볍게 사라졌다. 이 길을 빠져나가면 작은 신작로가 있고 작은 신작로를 지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눈감고도 훤하다. 수없이 긴장하고 놀라 깨어야 할 그 곳이. 구름의 노..

- 그의 애송詩 2021.10.13

백 년 동안의 고독 - 조동범

발견되지 않은 루트를 따라 고독이 발굴되었다. 얼음산을 오르던 자들의 시신은 놀라운 고독으로 가득했고, 고독의 외로움은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시신들은 저마다 침묵하며 고독했으므로 죽은 자들의 흐느낌은 침엽수림을 돌아보며 어느덧 사라졌다. 누구나 침묵했고 언제나 고독했다. 돌아서면 세상은 고독한 폭설로 가득했다. 고독이 발굴되었지만 고독한 낮과 밤을 앞에 두고 세계의 모든 폐허는 말을 아꼈다. 지상은 이내 고독으로 가득 찼으므로 고독도 발굴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고독한 세월을 견디는 동안 눈보라는 그저 단조롭게 쏟아졌다. 죽은 자들은 잊혀졌고 오래된 씨앗의 발아는 요원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고독이야말로 고독에 이르는 길이라고 오래 전에 사라진 고독이 속삭..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