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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쓰다 -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선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도 돌아오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우산을 쓰다 - 심재휘

카테고리 없음 2021.10.13

시인의 말 - 여 정

2015. 6. 20. 시인의 말 여 정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다시 보면서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기법들에 조금 더 관심을 두었다. 나는 시를 쓰기 때문에 저러한 기법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아니면 저런 기법들이 시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최근에는 시에서도 다양한 기법들이 나오고 그 결과 다양한 형식들을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고 기쁘다. 물론 저러한 기법들이나 방법론들은 변종의 형태로 사회나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생겨낫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법이나 형식들은 내용에 따라 어떤 쓰임새로 적합한 형식을 찾아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회가 다양해졌으니 다양한 형식들이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 그의 애송詩 2021.10.13

참 따뜻한 세상 - 임동윤

보호수목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 아랫도리를 마냥 내주고 있다 바람이 들며 조금씩 벌어지는 속살 보이지 않는 틈을 비집고 들짐승 한 마리 매일 들어와 놀다간다 푸석거리고 쩍쩍 갈라지는 살을 부비며 흐벅지게 놀다간다 빗물에 눈보라에 오래 담금질한 것들, 비로소 썩어야 한껏 몸을 내주는 것이다 - 임동윤의 인용 임동균시인의 을 읽고 할말을 잃었었다 뭔가 머릿속에서는 연관이 지어지는데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받아드리자면 '깊은산속 옹달샘'같은 이야기인데 내 머릿속에서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산책을 나갔다가 대단한걸 보고 말았다 토성에 있는 늙은 상수리나무 밑둥치 구멍에 뭔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토끼였다. 토끼는 내가 ..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