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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 박주택

Trabler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여행자처럼 돌아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본다 숫기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지럽히는 흙을 바라다보고 있다 물에 젖은 돌에서는 모래가 부풀어 빛나고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 기억의 끝을 이파리가 흔들어 놓은 듯 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들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저 오랜 투병의 가슴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 곤한 안경을 깨워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온다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 박주택 박주택 1959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

카테고리 없음 2021.10.13

술잔, 바람의 말 - 김선우

그녀의 입술이 내 가슴에 닿았을 때 알 수 있었다, 흔적 휘파람처럼 상처가 벌어지며 그녀가 나의 세계로 걸어들어왔다 유리잔 이전이었던 세계, 바람이 나를 낳고 달빛이 이마를 쓸어주던 단 한줌 모래이던 때 그때 아직 그리움은 배냇누이라서 알 수 있었다, 내게로 온 그녀는 날개 상한 벌을 백일홍 붉은 꽃잎 속에 넣어주던 마음을 다치기 이전의 그녀였다 우리는 달빛 속에서 오래도록 춤을 추었다 그녀의 등줄기를 따라 바람이 강물을 길어왔고 입을 것이 없었으므로 맨몸인 우리는 상처에 꽃잎을 달아줄 수 있었다 한줌 모래이던 사금파리 별을 잉태했던 우리는, 날이 밝기 전 그녀는 떠날 준비를 했다 길은 지워져 달빛도 백일홍 꽃잎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그녀는 다시 왔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희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치..

- 그의 애송詩 2021.10.13

빗 속에서 시를 쓴다 (Poeming in the Rain)

Poeming in the Rain 비가 오는 날, 남성들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빗속으로 뛰어나가 비를 맞으며 떠나간 옛여인을 생각하고 가슴속에 저마다 자신들의 詩를 쓴다 그러다가 그도 시들해지면 선술집으로 달려가 파전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가슴에 담아 두었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이미 통곡을 넘어서고 있다 태어날적부터 음악으로치면 E단조의 감성을 지니고 태어난 시대적 로맨티스트, 몇몇 시인들의 비에 관한 詩를 모아 보았다 나, 윤필립부터 나의 스승이었던 김동리 선생님의 詩까지... 지나가는 울음이었나 너는 울고있었다 멈추지않는 울음소리 귀기울이면 멀어지고 가까이가면 도망가는 너는 신기루인가. 때로는 비에 씻겨 없어져 다가가보면 저만큼 다시 나타나는 너. - 윤필립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