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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생 -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걸 알았다 눈썹밑에 서걱이는 모래을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기도 드린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 무거운 생을 등에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 왔음을 알았다 류시화 / 낙타의 생

- 그의 애송詩 2021.10.13

봄볕아래, 서봉사(瑞峰寺)

봄볕아래, 서봉사(瑞峰寺)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모든분들께 합장을 드리며... 南 無 觀 世 音 菩 薩. 기막힌 저 햇빛을 보다, 봄날의 눈부신 스님과 마주 앉는다 동건 스님 둥근 미소는 수도산 치마폭 펼쳐지는 서봉사 범종각에 걸려 내려앉을 줄 모른다 부처님 오신 날 양이거나 사자이거나, 개이거나 고양이이거나 禪을 닦는다 인간사 음습蔭濕 서봉사 절 마당에 널린 봄볕에 말린다 - 윤은희의

- 그의 애송詩 2021.10.13

터미널 식당 - 전동균

터미널 식당 전동균 시계만 쳐다보는 초로의 남자와 육개장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앳된 파마머리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어디 먼 곳에 살러간, 살다가 돌아오지 못한 마음들 있었을까 4월인데 폭설 쏟아지고 산판으로 간다는 사내들은 제기랄, 티켓이나 끊자, 넘쳐나는 욕설의 화투판을 벌이고 그 사이 곰 그림자 몇 슬며시 들어와 신발을 털듯 문간에 서서 4홉 소주를 단숨에 비우고 사라졌다 해발 698미터, 사행(蛇行)의 밤을 끌고 온 길들이 모였다가 헤어지는 진부 터미널 식당 어떤 이는 흐린 불빛의 문을 밀고 나가 한 나라를 일으켰고 또 어떤 이는 칼을 품고 출가를 했지만 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산나물 보따리를 꼭 안고 졸고 있는 노파의 쇠스랑손과 멀어도 너무 먼 꿈속의 꽃빛을 더듬을 뿐, 마침내 눈보라의 ..

카테고리 없음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