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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식당 - 전동균

Chris Yoon 2021. 10. 13. 07:40

미널 식당               전동균

 

 

시계만 쳐다보는
초로의 남자와
육개장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앳된 파마머리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어디 먼 곳에 살러간,
살다가 돌아오지 못한 마음들 있었을까
4월인데 폭설 쏟아지고
산판으로 간다는 사내들은
제기랄, 티켓이나 끊자,
넘쳐나는 욕설의 화투판을 벌이고
그 사이 곰 그림자 몇 슬며시 들어와
신발을 털듯 문간에 서서
4홉 소주를 단숨에 비우고 사라졌다
해발 698미터, 사행(蛇行)의 밤을 끌고 온
길들이 모였다가
헤어지는
진부 터미널 식당
어떤 이는 흐린 불빛의 문을 밀고 나가 한 나라를 일으켰고
또 어떤 이는 칼을 품고 출가를 했지만
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산나물 보따리를 꼭 안고 졸고 있는 노파의
쇠스랑손과
멀어도 너무 먼 꿈속의 꽃빛을 더듬을 뿐,
마침내 눈보라의 덫을 뚫고 막차가 왔다
산적 같은 기사도 허연 숨 내뱉으며
소주병을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