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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s Tale VIII / 겨울강 :: 강은 언제나 옛날로 흘러간다 - 박지웅

2015. 2. 2. 강은 언제나 옛날로 흘러간다 박지웅 언 강물 위에 사랑한다 쓴 글씨 날이 풀리자 사랑은 떠났다 한때 강변을 찾았으나 강은 늘 빈집이었다 그 푸른 대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다 어느 기스락에서 패랭이를 만나 패랭이꽃을 낳고 진달래와 한 살림 붉게 차리고 살다 그 꽃들 다 두고 어디로 가는가 객지에서 그대를 잃고 나 느린 소처럼 강변을 거닐다 혓바닥을 꺼내어 강물의 손등을 핥곤 했다 저문 강에 발을 얹으면 물의 기왓장들이 물속으로 떨어져 흘러가는 저녁 이렇게 젖어서 해안으로 가는 것인가 세상의 모든 객지에는 강물이 흐르고 그리하여 먼먼 신새벽 안개로 흰 자작나무 숲 지나 구름으로 아흔아홉 재 넘어 돌아가는 것인가 저문 강은 말없이 서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강은 언제나 옛날로 흘러간다 *..

- 그의 애송詩 2021.10.13

Winter's Tale VII /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박윤규

슬픈 바퀴 - 브레히트를 생각함 한계령 정상, 이젠 내리막이다 기하급수로 따라붙는 가속도를 조절하느라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잡으면 단풍설악은 풍랑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산동네 식당 앞에 두 바퀴를 세웠을 땐 향로봉에 찔린 하늘 피가 번지고 몇 채 안 보이는 인가엔 저녁 짓는 안개가 환각제 같다 산골식당 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어깨 큰 반백 노인네가 돌아앉아 있다 등은 적당히 굽었고 목엔 역마살 깊이 주름진 강 쥐색 베레모를 푹 눌러 쓰고 느긋하게 산채비빔밥을 먹고 있는 노인의 코트는 지독하게 바랜 검은색이다 그의 왼쪽엔 보다 만 듯 접혀진 책 한 권 살' 아 남 은 자 의 슬픔 ' 노란 표지에 회색 제목 외 더 작은 글씨가 줄을 서 있지만 그건 이미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노인의 식탁모서리를 잡고 허물어..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