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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혹은 슬프지 않은 비극 - 유하

폼페이, 혹은 슬프지 않은 비극 유하 폼페이 유적지를 거닐었다 식은 용암에 묻혀 있는 그대를 생각했다, 철 지난 해수욕장의 풍경처럼 한바탕 들끓던 욕망이 지나간 자리 로마産 아가씨, 안토넬라의 노란 우산이 그 옛날 화신극장 쇼걸의 팬티처럼 아름다웠다 눈 파란 집정관의 딸을 그리며 들개처럼 질주하던 내 마음의 종로2가는 폐허였다 비극 시인의 집(j.Ⅷ n. 5)이 보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을 구상하다 불덩이를 맞이했으리라 열일곱 시절, 그때 난 화신극장에 앉아 두 손으로 폭발하는 베수비오 화산의 용암을 만졌다 난 향락을 원했다 퇴폐를 원했다 화신극장은 나의 폼페이였다 비극 시인의 집이었다 식은 용암 속의 그대, 고통의 화석이여 무너진 화신극장의 돌기둥 앞에서 담담하게 인정한다 나는 이제 폐인이 ..

우리는 수력 발전소처럼 건강했다 - 유하

우리는 수력 발전소처럼 건강했다 유하 - 이문재 시인의 '형부는 수력 발전소처럼 건강하다'를 암송하던 시절에 바친다- 한 시인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며 그와 난 시인을 꿈꾸었다 발전소 푸른빛으로 온몸을 충전하던 시절이었다 댐의 수위는 늘 아슬아슬했다 마음의 지독한 가뭄은 가문비나무를 노래하곤 했다 첫사랑의 물을 온몸에 적시며 그와 나는 늘 영혼 저편에 있는 수력 발전소의 수심을 쟀다 푸른 희망의 수심을 우리는 이미 상한, 실패한 갈대였지만 하늘 아래 넉넉히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병들었고 또 수력 발전소처럼 건강했다 우리는 진실로 바라는 게 있었으므로 반딧물처럼 전력을 다해 자기 몸을 불 밝혔다 밤이면 우리들의 열망은 수천 수만 볼트의 전류를 일으키며 송전탑으로 흘러갔다 아아, 그러나 우리는그 댐을 넘..

- 그의 애송詩 2021.10.13

萬行 / 김재진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萬行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모든분들께 합장을 드리며... 南 無 觀 世 音 菩 薩. 갑자기 모든 것 낮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 김재진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만행(萬行)이란, 말 그대로 만가..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