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560

눈(眼)속의 사막 - 문인수

눈(眼)속의 사막 문인수 눈에, 두어 알 모래가 든 것 같다. 안구건조증이다. 이럴 땐 인공누액을 한 두 방울 ‘점안’하면 한결 낫다. 이건… 마음의 사막이 몰래 알 슬어 공연히 불러들인 눈물이다. 하긴, 사람의 눈물은 모두 사람이 만드는 것. 그 눈물 퍼 올려 너에게로 가야하는 메마른 과목이 있다. “눈에 밟힌다”는 말은 참 새록새록 기가 막힌다. 그 누군가를 하필 가장 예민한 눈에다 넣고, 그 눈으로 자주, 사무치게 자근자근 밟아댔을 테니, 어찌 아프지 않았겠나, 눈앞이 정말 깜깜하지 않았겠나, 그래, 눈물 나지 않았겠나. 그리운 사정을 이토록 가슴에 박히는 듯 압축한, 극에 달한 절창이 세상 어디에, 언제,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눈에, 그 엄청난 황사를 설마 다 몰아넣고 그걸 또 남김없이 밟으며..

- 그의 애송詩 2021.10.13

모래척추 - 마경덕

평생 누워있는 사막, 바람이 불때마다 와르르 척추가 흘러내린다 모래척추는 사막의 고질병, 모래수렁과 유사流砂는 산 자의 뼈를 삼켰지만 사막의 등뼈는 자라지 않았다 척추가 무른 아비 어미도 그렇게 평생을 뒹굴며 늙어가고 흙바람이 불때마다 낙타의 무릎만 단단해졌다 만년설에 목을 축인 타클라마칸 미라가 된 천년 묵은 호양나무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이나 걸었나 물결처럼 건너간 바람의 발자국을 신어봐도 모래의 유전자는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저 모래척추를 무엇으로 부축할까 무릇, 등뼈는 수직이어야 한다 수평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회오리를 붙들고 돌아눕는 사막 욕창 난 등이라도 말려야한다 - 마경덕의 全文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신발論」

- 그의 애송詩 2021.10.13

바람이 지나간다 -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시 :: 천양희시인의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