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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고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마흔 세살 나의 이마에 불헌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흐르는 까닭일까 저 때가 언제였던가?.... 아들 아이가 너댓살 밖에 안돼..

- 그의 애송詩 2021.10.14

나의 통증엔 별이 없다 - 고재종

2015. 11. 22. 나의 통증엔 별이 없다 고재종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에, 라고 쓰면 딴엔 화사한 것이 적지 않은 너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고 번역하던 창가였다. 창문을 열면 이제 별 한 톨 없이 고속도로의 굉음만 쏟아져 들어오는 밤, 통증 때문에 침대 끝에 나앉았는데 호랑이띠인 너는 무슨 으르렁거릴 게 많아서 이빨을 득득 갈며 잘도 잔다. 무게라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도 네 것까지 한껏 도맡아 안고 별빛으로 길의 지도를 읽어대던 시절의 빛이 사라진 후, 쾌락이라면 마지막 한 방울의 것까지 핥던 서로가 아픔은 한 점이라도 서로 나눌 수 없는 슬픔에 목이 멜 필요는 없으리라.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상처 입은 날들의 적재와만 같은 마주보이는 어둠의 아파트, 하기야 생겨 하나만으로도 서둘러 ..

- 그의 애송詩 2021.10.14

귀가 서럽다 - 이대흠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 이대흠의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