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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Winter Story / 겨울 이야기 - 김상미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듣고 있었다 세상 모든 추운 것들이 추운 것들끼리 서로 모여 내 핏속 추운 것들에게로 다가와 똑 똑 똑 생의 뒷면으로 가는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있었다 물결치는 겨울 긴 나이테에 휘감긴 울창한 숲 향기와 지저귀는 새소리와 무두무미한 생의 입김들이 다시 돌아올 봄 문턱에다 등불 환히 켜는 소리 듣고 있었다 마치 먼 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천천히 가슴으로 녹이는 것처럼 내 몸 안의 겨울 이야기들이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실려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기억 ..

- 그의 애송詩 2021.10.14

내 영혼의 중앙역 - 박정대

키냐르, 키냐르……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음악처럼, 문지방처럼, 저녁처럼 네 젖가슴을 흔들고 목덜미를 스치며 네 손금의 장강 삼협을 지나 네 영혼의 울타리를 넘어, 침묵의 가장자리 그 딱딱한 빛깔의 시간을 지나 욕망의 가장 선연한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네 육체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저녁마다 너를 만나던 이 지상의 물고기 자리에서 나는 왜 네 심장에 붙박이별이 되고 싶었는지 네 기억의 붉은 피톨마다 은빛 비늘의 지문을 남기고 싶었는지 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외로운 몸짓으로 네 몸을 거슬러 오를 때도 내 영혼은 왜 또 다른 생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 생이 더 이상 생일 수 없는 곳에서, 생이 그토록 생이고만 싶어하는 곳에서 부르지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은밀해서 생..

- 그의 애송詩 2021.10.14

겨울의 빛 - 장석주

시골길 작은 웅덩이마다 살얼음이 끼어 있고 숲은 멀리 있다. 농장 집 개들이 인기척에 놀라 사납게 짖어댄다. 개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저 늑대의 종족들을 가둔 어리석음이 죄악이다 빠르고 민첩한 것들이 사라진 숲, 잔광殘光을 받으며 드러나는 가난한 살림, 이끼들이 고사한 나무 등걸 위에 들러붙어 있다. 나는 좀 더 걸어 숲속으로 들어간다. 물가에 집을 꾸리고 살던 시절은 이미 옛날이다. 감찰나무 아래에선 상심들이 바스락댄다. 숲속에서 위층 집 사람을 생각한다. 오후 네 시마다 피리를 부는 사람, 음들의 혼돈 속에서 바른 음을 찾아 세우는 그는 서른 몇 해 전에 내가 알던 사람, 그를 만난 것도 이미 옛날이다. 누군가 천지간의 빛들을 거둬 갈 무렵 내 그림자와 함께 나무들의 그림자들이 길어진다. 지나..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