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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뒷골목을 걷다가 - 권재효

런던 뒷골목을 걷다가 - 첫사랑 에밀리 권재효 열여덟 그 겨울에 에밀리를 만났다 찰즈 디킨즈 영감이 소개한 외로운 처녀 에밀리 집안 좋고 부자에 또 잘 생긴, 스티어포스가 유혹했을 때 에밀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둥둥둥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왔지만 끝내 바람둥이 그를 따라 나섰다 그에게서 버림받았을 때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을 때 하릴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고아 데이비드 ․ 커퍼필드, 아아니 나는, 시나부랑이 끄적이며 짝사랑의 아픔을 견뎠다 수십 년이 지나 런던 뒷골목을 걷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찰즈 디킨즈 그 영감이 미안한 듯 히죽이 웃고 막 골목 모퉁이를 돌아가는 에밀리를 보았지만 끝내 나는 부르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고 음악에 열중하던 시절, 권재효 시인의 詩, 을 우연히 읽고 한동안 그 ..

- 그의 애송詩 2021.10.14

막차 뒤에 남은 사람 - 윤병무

당신은 남고 나는 막차에 오릅니다 어찌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은 떠나는 내가 창가에서 흔드는 손 사이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어느날, 청춘이었던 당신의 속눈썹에 떨어진 첫눈처럼 곧 소멸될 당신임을 알면서 나는 입안에서나 맴도는 작별인사로 혓바닥이나 씹으며 당신을 남기고 떠납니다 떠나는 나처럼 떠나고 싶어 저물녘의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당신의 눈물 그 격정이 아직도 당신의 몸을 흔들고 있는데 나는 그믐의 어둠속으로 달리는 막차를 타고 떠납니다 그런 나는 당신이었다가 나였다가 결국 승강장에 남아 한 그루의 가로수가 됩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잡은 당신은 나는 오늘도 막차를 타고 떠나가다가도 다시남아 가로수 한 그루가 더 됩니다 둘러보면 즐비한 가로수들, 가로수의 깊은 뿌리들 많..

- 그의 애송詩 2021.10.14

내 청춘이 지나가네 (Ma Jeunesse Fout Le Camp) - 박정대

내 청춘이 지나가네 (Ma Jeunesse Fout Le Camp) 박정대 내 청춘이 지나가네 말라붙은 물고기랑 염전 가득 쏟아지는 햇살들 그렁그렁 바람을 타고 마음의 소금 사막을 지나 당나귀 안장 위에 한 짐 가득 연애편지만을 싣고 내 청춘이 지나가네, 손 흔들면 닿을 듯한 애틋한 기억들을 옛 마을처럼 스쳐 지나며 아무렇게나 흙먼지를 일으키는 부주의한 발굽처럼 무너진 토담에 히이힝 짧은 울음만을 던져둔 채 내 청춘이 지나가네, 하늘엔 바람에 펄럭이며 빛나는 빨래들 하얗게 빛바랜 마음들이 처음처럼 가득한데 세월의 작은 도랑을 건너 첨벙첨벙 철 지난 마른 풀들과 함께 철없이 내 청춘이 지나가네, 다시 한 번 부르면 뒤돌아볼 듯 뒤돌아볼 듯 기우뚱거리며 저 멀리, 내 청춘이 가고 있네 Ma Jeunesse ..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