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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처럼 떠난다 - 박정대

테베에서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발칸 반도의 서쪽 해안을 따라 아르타로 간다. 이 해안선의 어디쯤엔가, 자다르와 가에타, 툴롱과 말라가가 있을 것이다. 말라가에서 바라보면 지브롤터 해협 건너 오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랑에서 계속 해안을 따라 가다보면 세투발에 닿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비고와 히혼을 거쳐서 라로셸로 향한다. 라로셸에서 바라보는 비스케이灣의 황혼은 아름답다. 그러나 칼레로 가는 우리는 비스케이만의 아름다움에 쉽게 눈멀지 않는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해서 해안선을 따라 칼레를 지나 암스테르담과 오르후스와 탈린과 말뫼와 페쳉가와 아르항겔스크를 지나 카닌 반도로 간다. 카닌 반도는 춥다. 너무 추워서 아름다운 반도, 카닌 반도에서 水晶의 나무들이 산다. 그러나 그 ..

- 그의 애송詩 2021.10.14

茶 한 잔 - 길상호

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 찻잎 덜어낼 때 귓밥처럼 쌓여 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차갑지도 않게 숙우(熟盂)에 마음 식혀내는 일, 빗소리와 그 사이 떠돌던 풍경소리도 타관(茶罐) 안에서 은은하게 우려내는 일, 차를 따르며 졸졸 물소리 마음의 먼지도 씻어내는 일, 깨끗하게 씻길 때까지 몇 번이고 찻물 어두운 내장 속에 흘려보내는 일, 퇴수기(退水器)에 찻잔을 행구 듯 입술의 헛된 말도 남은 찻물에 소독하고 다시 한번 먼 강 바라보는 일, 나는 오늘 수종사에 앉아 침묵을 배운다 길상호 - 차 한 잔 수종사(水鐘寺)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절.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39년(세종 2..

- 그의 애송詩 2021.10.14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 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 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 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 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 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같은 눈이 내리지. 박정대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