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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외진 별정 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메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 신경림의 2015년의 마지막 날이다 2015년의 마지막 날이다 한 해를 보내며 ‘무엇을 두고 온 듯’한 마지막 날. 12월 31일. 잠시 머물렀던 간이역, 외진 여행지의 모텔방이나 혹은 쓰레기통까지라도 뒤져 찾을 수 만 있다면 찾고싶다 세..

- 그의 애송詩 2021.10.14

귀로 ( 歸路 ) - 이정하

돌아오는 길은 늘 혼자였다 가는 겨울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내 마음도 무너져왔고 소주 한 병을 내 주머니에 쑤셔넣고 시외버스를 타는 동안에 차창 밖엔 소리없이 눈이 내렸다 그대를 향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둔다는 것, 그것은 정말 소주병을 주머니에 넣듯 어딘가에 쉽게 넣어 둘 일은 못 되었지 나는 멍하니 차창에 어지러이 부딪쳐오는 눈발들을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내 사랑이 언제쯤에나 순조로울지, 오랫동안 우리가 기다려온 것은 무엇인지, 어디쯤 가야 우리 함께 길을 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저 차창에 부서지는 한 송이 여린 눈발이었다 무언가를 주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주지 못한 채 돌아 섰지만 그대여, 나 지금은 슬퍼하지 않겠다 폭설이 내려 길을 뒤덮는다 해도 기어이 다시 찾아올 이 ..

- 그의 애송詩 2021.10.14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