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귀로 ( 歸路 ) - 이정하

Chris Yoon 2021. 10. 14. 07:50

 

 

돌아오는 길은 늘 혼자였다

가는 겨울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내 마음도 무너져왔고

 

소주 한 병을 내 주머니에 쑤셔넣고

시외버스를 타는 동안에

차창 밖엔 소리없이 눈이 내렸다

 

그대를 향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둔다는 것,

 

그것은 정말 소주병을 주머니에 넣듯

어딘가에 쉽게 넣어 둘 일은 못 되었지

 

나는 멍하니 차창에 어지러이 부딪쳐오는

눈발들을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내 사랑이 언제쯤에나 순조로울지,

오랫동안 우리가 기다려온 것은 무엇인지,

어디쯤 가야 우리 함께 길을 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저 차창에 부서지는 한 송이 여린 눈발이었다

 

무언가를 주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주지 못한 채 돌아 섰지만

그대여,

나 지금은 슬퍼하지 않겠다

 

폭설이 내려 길을 뒤덮는다 해도

기어이 다시 찾아올 이 길을

 

문득 고개들어 보니

차창 너머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그대

 

그대 모습이 이토록 눈물겨운 것은

세상에 사랑보다 더한 기쁨이 없는 까닭이다

 

버스는 출발 했으나

내 마음은 출발하지 않았다

 

비록 몸은 가고 있으나

나는 언제까지나

그대 곁에 머물러 있다

 

 

- 이정하 의 <귀로 / 歸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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