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머스 윤성택 늦은 밤 공중전화부스에 사내가 들어있다 꾹꾹 눌러낸 다이얼은 서른 번을 넘긴다 타국으로 젖어드는 신호음 저편 그리움이라는 색깔로 반응하는 목소리, 부스 안은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 수화기는 왼쪽 어깨로 넘겨져 데워지고 불러낸 이름을 유리창에 적어본다 글씨에도 뿌리가 뻗는지 흘러내리는 획마다 생장점이 먼지로 뭉친다 바지에 묻은 톱밥이 발아 중이고 뒷주머니에 삐죽 붉은 목장갑도 피었다 안개에 젖고 밤바람에 흔들려 후둑, 스포이드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나뭇잎 가을은 그렇게 한 색깔로 반응해 물들어간다 사내는 고향을 봉숭아꽃처럼 물들이고 싶다 꽁꽁 묶어 보낸 소포를 풀 즈음이면 첫눈이 내릴 것이다 슈퍼 간판불도 꺼져버린 자정 무렵, 사내의 머리와 어깨 실루엣이 공중전화부스 불빛에 흠뻑 젖는다 아득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