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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머스 - 윤성택

리트머스 윤성택 늦은 밤 공중전화부스에 사내가 들어있다 꾹꾹 눌러낸 다이얼은 서른 번을 넘긴다 타국으로 젖어드는 신호음 저편 그리움이라는 색깔로 반응하는 목소리, 부스 안은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 수화기는 왼쪽 어깨로 넘겨져 데워지고 불러낸 이름을 유리창에 적어본다 글씨에도 뿌리가 뻗는지 흘러내리는 획마다 생장점이 먼지로 뭉친다 바지에 묻은 톱밥이 발아 중이고 뒷주머니에 삐죽 붉은 목장갑도 피었다 안개에 젖고 밤바람에 흔들려 후둑, 스포이드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나뭇잎 가을은 그렇게 한 색깔로 반응해 물들어간다 사내는 고향을 봉숭아꽃처럼 물들이고 싶다 꽁꽁 묶어 보낸 소포를 풀 즈음이면 첫눈이 내릴 것이다 슈퍼 간판불도 꺼져버린 자정 무렵, 사내의 머리와 어깨 실루엣이 공중전화부스 불빛에 흠뻑 젖는다 아득히..

- 그의 애송詩 2021.10.13

바람의 노래 - 김선근

몽골 고비고원 한 무리 쌍봉낙타들이 모래언덕을 걸어가고 있다 앞니가 빠진 노인이 연신 채찍을 가한다 유목민으로 살아온 사내 낙타의 코를 뚫며 바짝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반 방목, 영역을 벗어난 적이없는 교미할 때나 짐을 실을 때 무릎을 꿇는 목이 뻣뻣한 인간이나 털을 깎이며 살아있어도 죽어버린 양이나, 저 순종의 시원 며칠째 새끼 젖을 물리지 않는 어미 마두금을 켜는 늙은 악사의 손끝이 떨리고 우우 현에서 뿔을 자르고 밀림을 지나 강을 건너는 낙타 떼 울음소리가 들린다 두 겹의 눈가 촉촉이 젖는다 아픔을 치유한 어미가 가랑이를 벌리며 젖을 물린다 잠시 모래 폭풍에 휩쓸려간 우윳빛 감성은 어둠 속에서 무수히 빛나는 행성 낙타로 살아가는 뭉툭한 발굽으로 진화되어버린 사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태고의 짐..

- 그의 애송詩 2021.10.13

유목 (Nomadism / 遊牧 )

遊 牧 遊 牧 차마 버리고 두고 떠나지 못한 것들이 짐이 된다 그의 삶에 질주하던 초원이 있었다 지친 것들을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생각한다 한 꽃이 지며 세상을 건너듯이 산다는 일도 때로 그렇게 견뎌야 하겠지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일까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때 머물렀던 것들이 병이 되어 안긴다 아득한 것은 초원이었던가 그렇게 봄날이 가고 가을이 갓다 내리 감긴 그의 눈이 꿈을 꾸듯 젖어 있다 몸이 무겁다 이제 꿈길에서도 유목의 길은 멀다 - 박남준의 유목민의 꿈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