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바람의 노래 - 김선근

Chris Yoon 2021. 10. 13. 10:28

 

 

몽골 고비고원 한 무리 쌍봉낙타들이

모래언덕을 걸어가고 있다

앞니가 빠진 노인이 연신 채찍을 가한다

유목민으로 살아온 사내

낙타의 코를 뚫며 바짝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반 방목, 영역을 벗어난 적이없는

교미할 때나 짐을 실을 때 무릎을 꿇는

목이 뻣뻣한 인간이나 털을 깎이며 살아있어도 죽어버린 양이나,

저 순종의 시원

며칠째 새끼 젖을 물리지 않는 어미

마두금을 켜는 늙은 악사의 손끝이 떨리고

우우 현에서 뿔을 자르고 밀림을 지나 강을 건너는

낙타 떼 울음소리가 들린다

두 겹의 눈가 촉촉이 젖는다

아픔을 치유한 어미가 가랑이를 벌리며 젖을 물린다

잠시 모래 폭풍에 휩쓸려간 우윳빛 감성은

어둠 속에서 무수히 빛나는 행성

낙타로 살아가는

뭉툭한 발굽으로 진화되어버린 사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태고의 짐승은

출렁거리는 사막을 유리하는 배

밧줄로 단단하게 동여맨 게르 귀퉁이

포구에 정박한 낙타들이 고단한 걸음을 꺾는다

늑대의 울음소리와 어둠을 몰고 온 사막이 긴 활대로 마두금을 켜며

밤을 조율하고 모태를 상실한 낙타 한 마리가

바람의 노래에 귀를 세우고 있다

 

 

 

- 김선근의 '바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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