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560

아무도 아직 말해 주지 않았다 - 권재효

May 안개가 자욱했던 그 해 4월 유사이래 이런 안개는 처음이라고 사람들은 쑤근거렸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이 산 저 산 뻐꾸기 소리... 5월 들어서야 안개는 걷혔다 총소리 군화 발자욱 소리 안개는 순식간에 걷혔다. 밝아온 새 날은 정의와 평화의 깃발 높이 날렸지 안정과 화합의 깃발 높이 날렸지 정의와 안정과 평화와 화합은 니기미, 꼭 총칼로만 오느냐고 사람들은 또 쑤근대었지. 이어서 시작된 뻐꾸기 사냥 나 역시 한 마리 뻐꾸기였을까? 댕강 모가지를 잘리고 말았지. 내 잘린 모가지를 두고 어떤 사람은 언론 정화라 하고 어떤 사람은 언론학살이라 하더라만 진정 내 모가지의 의미를 아무도 아직 정말은 말해 주지 않았다. 구천을 떠도는 나의 모가지여! - 권재효 시인의 '아무도 아직 말해 주지 않았다’ 전문 ..

- 그의 애송詩 2021.10.14

장미빛 인생 - 기형도

La Vie En Rose 문을 열고 사내가 들어온다 모자를 벗고 그의 남루한 외투처럼 히끗히끗한 반백의 머리카락이 드러난다 삐걱이는 나무의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밀어넣고 그는 건강하고 탐욕스러운 두 손으로 우스꽝스럽게도 작은 컵을 움겨쥔다 단 한번이라도 저 커다란 손으로 그는 그럴듯한 상대의 목덜미를 쥐어본 적이 있었을까 사내는 말이 없다, 그는 함부로 자신의 시선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한 곳을 향해 그 어떤 체험들을 착취하고 있다 숱한 사건들의 매듭을 풀기 위해, 얼마나 가혹한 많은 방문객들을 저 시선은 노려보았을까, 여러 차례 거듭되는 의혹과 유혹을 맛본 자들의 그것처럼 그 어떤 육체의 무질서도 단호히 거부하는 어깨 어찌 보면 그 어떤 질투심에 스스로 감격하는 듯한 입술 분명 우두머리를 꿈꾸었을, ..

- 그의 애송詩 2021.10.14

간밤 꿈속에서 또 고래를 보았다 - 권재효

간 . 밤 . 꿈 . 속 . 에 . 서 . 또 . 고 . 래 . 를 . 보 . 았 . 다 바다로 가고싶어 누군가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다. 바다로 가고 싶어, 바다로 가고 싶어……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제주에선 어디서나 바다를 볼 수 있는데 어디서나 시원스런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토록 내가 바다를 갈구한다는 것은 나는 바다로 가보았다 배를 타고 사흘 낮과 밤 바다와 살을 섞을 땐 더 황홀한 별빛이여 그러나 멈추지 않는 갈증 바다로 가고 싶어, 바다로 가고 싶어 마치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애절하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바다로 가고 싶어, 이 말은 누군가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겐 아늑한 집이 있지 귀여운 아이들과 싹싹한 아내가 있지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