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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포구 - 권재효

1. 겨울 포구에는/ 하늘이 나즈막하게 닫혀있어/ 갈매기가 높이 날지 못 했다// 방파제 끄트머리/ 바다로 향해 서있던/ 소녀의 두 눈은 젖어 있었을까? - 「사하리 포구 1 - 방울소리」에서 2. 사하리 포구에 가면/ 지금도 그 가시내 방파제 끝에서/ 긴 머리 폴폴 날리고 있겠다// ...// 바다엔 황홀한 집어등 불빛/ 은갈치 떼 몰려오는데/ 설움도 포개면 기쁨이 되는가/ 그 밤사 파도소리도 희열로 끓더라니 - 「사하리 포구 2 - 은갈치떼」에서 3. 가시내랑 살림을 차릴 걸 그랬다/ 청운의 꿈은 애당초 내 것 아니기에/ 이름 없는 포구에서/ 갈치나 낚으며 살 걸 그랬다 // 동서남북 헤매어도 남는 건 바람뿐이던 걸. 모질고 모진 가시내 그렇게 목숨 버릴 줄이야..../ 내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 시..

- 그의 애송詩 2021.10.14

고독의 깊이 - 기형도

고독의 깊이 기형도 한차례 장마가 지났다 푹푹 파인 가슴을 내리쓸며 구름 자욱한 강을 걷는다 바람은 내 외로움만큼의 중량으로 폐부 깊숙한 끝을 부딪는다 상처가 푸르게 부었을 때 바라보는 강은 더욱 깊어지는 법 그 깊은 강을 따라 내 고통도 가만히 띄운다 그 아픔은 잠길 듯 잠길 듯 한 장 파도로 흘러가고 아, 운무 가득한 가슴이여 내 고통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 그의 애송詩 2021.10.14

장마,... 빗길을 나서면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 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결딜 수 없도록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빗방울, 빗방울들 - 나희덕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