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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의 담쟁이

가끔 바람의 리듬을 타고 절벽을 올랐지 사실 그 땐 흡착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많이 서툴렀어 지금 말이지만 아직도 착 달라붙어있는 것은 마른 벽에 부딪는 바람 때문이야 - 담쟁이 / 안로 촬영 MEMO 절두산 성지는 1866년 2월, 프랑스군함이 천주교탄압을 문제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자 격분한 대원군이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목을 베어 참수한 끔찍한 역사의 현장이다 象國과 한강을 따라서 강변도로를 달려 영등포 노들로에 있는 꼬리곰탕집을 가던중, 길을 잘못 들어 한강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우측에 우뚝 선 잠두봉 절벽에 聖地를 향해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을 보았다 바짝마른 담쟁이 넝쿨은 흡사 聖地를 향해 오르는 순교자들의 혈관과 같았다 象國에게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한 후, 비를 맞으며 절벽..

- 그의 애송詩 2021.10.14

알함브라(Alhambra)

왕은 가던길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노을이 휘장처럼 드리운 아름다운 궁전.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감상에 젖는 순간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왕은 명하였다 어린 사이프러스 몇 그루를 구해오너라 병사들이 어린 나무들을 가져오자 길가에 심도록 명하였다 이는 우리들의 혼이니라 우리가 떠난 후에도 우리의 혼은 연연히 살아있을 것이다 왕이 말하자 신하들과 왕자. 공주, 비빈, 노예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과 탄식 사이프러스 나무에 스며들었다 왕은 아프리카로 떠났다 초생달이 떠오르자 구름에 가리워졌다 수백년이 지나 한 나그네가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로 왔다 나무 아래 섰는데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생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오 만월이 되었다가 하현이 되었다가 모양만 바뀌는 것 뿐이라오 * 알함브라를 내..

- 그의 애송詩 2021.10.14

그 여름의 끝 - 이 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Poem / 이성복의 에서 (문학과 지성사 1990년 발행) Photo / 담양 소쇄원에서 산책을 하러 공원이나 아파트 정원을 거닐다보면 목백일홍을 많이 볼 수 있다 '베롱나무꽃'이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의 학명은 Fraxinus rhynchophylla Hance이며 관상용으로 부처꽃과(Lythraceae)에 속한다 ..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