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백 년 동안의 고독 - 조동범

Chris Yoon 2021. 10. 13. 07:23

 

 

발견되지 않은 루트를 따라 고독이 발굴되었다.
얼음산을 오르던 자들의 시신은 놀라운 고독으로 가득했고,
고독의 외로움은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시신들은 저마다 침묵하며 고독했으므로
죽은 자들의 흐느낌은 침엽수림을 돌아보며 어느덧 사라졌다. 


누구나 침묵했고 언제나 고독했다.
돌아서면 세상은 고독한 폭설로 가득했다.
고독이 발굴되었지만 고독한 낮과 밤을 앞에 두고
세계의 모든 폐허는 말을 아꼈다.
지상은 이내 고독으로 가득 찼으므로
고독도 발굴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고독한 세월을 견디는 동안
눈보라는 그저 단조롭게 쏟아졌다.
죽은 자들은 잊혀졌고 오래된 씨앗의 발아는 요원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고독이야말로 고독에 이르는 길이라고
오래 전에 사라진 고독이 속삭였다.
고독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고,
누구도 고독의 실체를 본적 없는 그동안의 세월이었다.
고독한 눈과 고독한 시신이 생생하게 서러웠으므로
고독은 이제 완전한 고독이 되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완성되자
비로소 세상은 고독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독이 고독을 앞에 두고 드디어,
고독을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고,
견디기 힘든, 고독이었다.



조동범 - 백 년 동안의 고독

 






* 아주 오래전 내 생애에 처음으로 영향을 준 형이 있었다
그는 안나푸르나 등반중 눈사태를 만나 조난을 당했다
구조대가 눈을 파헤치고 그를 발견했을때,
그는
평상시의 습관처럼 옆으로 누운체 잠들어 있었다
머리맡에선 그가 늘 사용하던 카메라도 발견되었다
그의 유작전이 서울에서 열리고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모두 잊었다
나는 사진일을 하게되면서 그가 잠든 안나프르나로 촬영을 떠났다
그가 조난 당한곳이 어디쯤인지 지도를 봐가면서.
아직 내 가슴속에는 그가 영원히 남아있다
푸르디 푸른 젊은 모습으로.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