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서원에서 묻다 문인수 마을 뒤, 산 밑에 오래 버려진 송산서원에서 나는 폐허에게 묻는다. 이쯤에서 그만 풀썩 무너지고 싶을까. 이것 저것 캐묻는다. 찔레 덤불이 겹겹 앞을 가로 막으며 못 들어가게 한다. 돌아서고 싶을까. 찔레 가시에 찔리며 억지로 들어선 마당, 그리고 뒤꼍. 풀대들, 풀떼며 잡목들이 불학무식하다. 공부하고 싶을까. 작은 마루에 방 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까. 기둥과 기둥 사이에 줄을 쳐, 토종 강냉이 수십 다발을 주렁주렁 널어두었다. 산새 부리들, 들쥐 다람쥐 청설모… 잇자국들이 대를 이어 상세하다. 이 빠진 세월은 또 얼마나 길까. 누군가 버리고 간 한 무더기 세로쓰기 책들, 대강 넘겨보니 사법고시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리고 취사도구 몇 잘살까. 거미줄이며 먼지가 이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