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406

새날 - 이병률

새날 가끔은 생각이 나서 가끔 그 말이 듣고도 싶다 어려서 아프거나 어려서 담장 바깥의 일들로 데이기라도 한 날이면 들었던 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누이들이기도 했다 누운 채로 생각이 스며 자꾸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들킨 밤에도 얼른 자, 얼른 자 그 바람에 더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좁은 별들이 내 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얼른 자, 얼른 자 그 밤, 가끔은 호수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터져 펄럭이던 살들을 꿰맨 것인지 금이 갈 것처럼 팽팽한 하늘이기도 하였다 섬광이거나 무릇 근심이거나 떨어지면 받칠 접시를 옆에 두고 지금은 헛되이 눕기도 한다 새 한 마리처럼 새 한 마리처럼 이런 환청이 내려앉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개벽을 할 거야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더 잠들..

- 그의 애송詩 2022.07.04

7월의 詩들

2022년의 7월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2022년의 새로운 해를 시작하고 잠깐 한눈을 팔듯 지냈는데 어느새 2022년의 반이 흘러가버렸다. 잃은것이 있다면 분명 얻은것도 있으리라. 잘 생각해보라. 나는 지난해부터 암선고를 받고(어쩌면 훨씬 더 먼저 발병했을지도 모른다.) 거의 죽음의 상태에 이르러 두달간 입원을 하며 온갖 검사를 마치고 아말로이드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모두 던져버리고 죽지않고 살기위해 애썼다. 2022년 7월은 나의 항암치료가 모두 끝나는 달이다. 이젠 희망을 노래하며 詩를 읽고 또 쓸것이다. 여기에 찾아놓은 시들은 모두 절망적이지않고 희망을 찾아떠나는 메시지를 담고있다. 7월의 장마비가 쉬어가는 듯 잠시 목을 축이고 늦은 새벽 내과병동 1232호 병실 창가..

- 그의 애송詩 2022.07.03

6월, 그대 생각 - 김용택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 6월, 그대 생각 / 김용택 6월이 끝나갑니다. 1년의 반이 지나갔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너무 더워서 주로 카메라를 메고 촬영을 나옵니다. 지나가는 길... 소나무 위의 왜가리 둥지에는 아직 새끼티를 못벗은 왜가리들이 내려쬐는 햇빛을 피하지 못하고 더위에 허덕입니다. 안쓰럽기는하나 모든게 세상이치 입니다. 얼마 안있어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겠지요. 비상... 후반기에는 저도 훨훨..

- 그의 애송詩 2022.06.24

조용한 기도 - 이문제

조용한 기도 이문제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 그의 애송詩 2022.06.21

노을 - 기형도

노을 기형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오후 6시의 참혹한 형량 단 한 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시간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상징들을 몰아내고 있다. 도시는 곧 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책이 되리라. 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오후 6시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 그의 애송詩 2022.06.20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강제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강제윤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그리움을 견디고 사랑을 참아 보고싶은 마음, 병이 된다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느냐 그것이 어찌 그리움이겠느냐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을 때는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우리 사랑은 몇 천 년을 참아 왔느냐 참다가 병이 되고 사랑하다 죽어버린다면 그것이 사랑이겠느냐 사랑의 독이 아니겠느냐 사랑의 죽음이 아니겠느냐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말하지 마라 사랑은 살아지는 것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머지않아 그리움의 때가 오리라 사랑의 날들이 오리라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어느새 시간이 저렇게 흘러갔나 지나간..

- 그의 애송詩 2022.06.15

6월 - 김용택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 6월, 그대 생각 / 김용택 6월이 오면 양평으로 가고싶다. 근 2년을 자주 양평에 있는 친구의 농막엘 가곤했었다 가는날은 햇빛이 쨍-한데 가고나면 구름이 끼고 밤사이에 비가내렸다. 도라산역에서 차를 멈추면 작은 호수도 있고 넓은 양귀비밭이 펼쳐져있다. 한낮의 양귀비밭은 현깃증이 나도록 뜨겁고도 아름답다 그 무덥고 뜨거운 양귀비꽃 벌판을 헤집고다니다가 친구의 농막이있는 산으로 오..

- 그의 애송詩 2022.06.02

6월 - 임영준

6월 임영준 언제쯤 철이 들까 언제쯤 눈에 찰까 하는 짓이 내내 여리고 순한 열댓 살 적 철부지 아들만 같던 계절은 어느새 저렇게 자라 검푸른 어깨를 으스대는가 제법 무성해진 체모를 일렁거리며 더러는 과격한 몸짓으로 지상을 푸르게 제압하는 6월의 들녘에 서면 나는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 가슴속 기우(杞憂)를 이제 지운다 뜨거운 생성의 피가 들끓어 목소리도 싱그러운 변성기 저 당당한 6월 하늘 아래 서면 나도 문득 퍼렇게 질려 살아서 숨쉬는 것조차 자꾸만 면구스런 생각이 든다 죄지은 일도 없이 무조건 용서를 빌고 싶은 6월엔. 그 낙원에서, 나 살고 있다 6월이 오면서 창문앞에 서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에 잎이 많이 무성해졌다. 푸른 가지들이 바람이 불적마다 흐느적거리며 온몸을 흔든다. 책을 읽기위해 등이..

- 그의 애송詩 2022.06.01

어떤 시위 - 공광규

어떤 시위 공광규 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 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갓나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 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공광규 시집 『 담장을 허물다 』,《창비 》에서 푸른 5월의 시작이다.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있다. 일년중 나무들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바로 5월이 아닐까! 몇일동안 나는 내가사는 아파트 베란다앞의 메타세콰이어나무가 푸르러지는 것을 문을열고 한참씩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잎..

- 그의 애송詩 2022.05.01

여승 - 백석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山 깊은 금덩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에 대한 오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인생은 밑지는 장사가 되기 쉽다. 그런데 도시에 갇힌 사람이나 기억력이 너무 좋아 한번 본 것은 고스란히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언젠가 한번 읽었던 소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 그의 애송詩 2022.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