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무화과가 익어가는 순간 - 조용미

Chris Yoon 2022. 7. 19. 00:49

 

 

무화과가 익어가는 순간          조용미


비가 큰 새처럼 날아다닌다
큰 새의 깃털들이
옆으로, 위로 흩어지고 있다

바람은 비를 데리고 옆으로, 옆으로

많은 먹구름이 지나갔다
더 많은 바람이 지나갔다 비는 다시
돌아왔다

그 자리다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시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고마나루 삵의 발자국은 발톱을 오므리고 걷는다

초록이 바람을 끌고 날뛰고 있다

태풍이 위서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나는 큰 새의 그림자를 덮고 있다

—《시와 사상》2020년 겨울호

 

 

장장 7개월간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병원문을 나선지 이제 3일이 지났다.

3일동안 나에게는 많은 심적 변화가 있었다. 

밖의 세상과 담을 쌓고 거실유리창으로 보이는 남한산성에서부터 내려오는 세상풍경을 보니 요즘이 장마철이란걸 알겠다.

장마...

꽃이 갔다. 여름은 꽃을 보내고 심하게 앓는다. 변모 변경의 계절이 여름이다. 꽃을 잃은 절망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동시에 갖는 시기이다.

'비가 큰 새처럼 날아다닌다. 바람은 비를 데리고 옆으로, 옆으로 많은 먹구름이 지나갔다  더 많은 바람이 지나갔다.'

시인은 지난날의 황폐한 순간을 장마로 드러낸다.

 

나는 아직 돌아오지않는 신경으로 인해 우측 다리를 쓰질못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산다.

침실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욕실로... 그렇게 하루종일 조금씩 움직이면서 넘어지지않기 위해 조심을 한다.

주치의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억지로 뭔가 입에 넣으려고 애쓴다.

지난 7개월,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입은 소태처럼 쓰고 음식을보면 거식증이 일어나며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이젠 항암치료가 끝났다는 안도감일까? 무엇이던지 처음부터 하기로 했다.

우선 없는 입맛을 되돌리기위해 떡을 사먹기로 했다.

그래서 새벽마다 배달이되는 쿠*으로 들어가 강원도 감자떡, 콩과 견과류가 섞인 영양떡 등을 사먹었다.

지금은 제주 오메기떡으로 메뉴를 바꿔서 식사를 대신한다.

잠은 여러달을 이미 못잤다.

그런데 이상도하지. 항암치료를 마치고 거실 소파위에 누워서도 깜빡씩 잠이든다.

밤에도 군데군데 깨기는 하지만 비교적 잠을 잤다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가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지난 계절의 새싹들에게 깊은 시련을 주고 더러는 희망을 꺾어 버리기도 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시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이처럼 시는 우리의 삶에 감정을 흔들리게 한다.

- 삵처럼 발톱을 오므리고 걸어야 하고 마음을 접고 오히려 그림자를 덮어 마주 서야 할 시간 일지도 모른다. 초록이 바람을 끌고 날뛰고 있다. 태풍이 위서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이토록  참혹의 순간이 화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태풍의 순간에도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고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놓지 말기를 간절히 말한다.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이 한 편의 시가 내가 항암치료를 마치고나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가를 훗날 평가할 것이다.

 

 

尹馝粒(윤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