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긴 이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격류 속에 두 발을 딛고
깊은 생각으로 길어 올린 빛을
어둠 속의 등대처럼 발신하고 있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갈 때
긴박한 행동들이 사고능력을 압도할 때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속도 빠른 변화의 한가운데서
심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직관하는 사람
미래의 눈빛으로 전체를 뚫어보며
시대정신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사람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중.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작년 7월부터 올 7월, 일년이라는 인내끝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공백을
미처 8월이 오기도 전에,
7월 한달 30을 채우기도 전에
그는 간다. 총총한 발걸음.
편안하고 미련없이 함께 걸었던 해안선을 혼자 걸어가는 그.
- 가지마라.
붙잡고 막아서며 말해볼까?
아니면 그저 묵묵히 떠나는대로 보고만 있어야하나?...
언젠가는 올것이라는 불교예감(佛敎豫感)도 있었지만 이건 너무 빠르다
그러나 아무말없이 그저 하자는대로 보내기로했다
언젠가 또 다시 연(緣)이되면 돌아오기도 할테니까
그가 떠나고나면 나는 무척 허전할것이다
가는 곳마다 그가 생각날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 산길을 달리며, 혹은 바닷길을 달리며 주고받던 대화,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던 우리의 조국山河.
그곳에서 머물렀던 해넘어가기전의 시간들
어쩌라고... 그 많은 이야기를 남겨두고 그는 훌훌 떠난단 말인가.
앞으로 어찌 살아갈까?...
그러나 나의 건강부터 추스르기로했다.
내가 다시 건강하면 그도 어쩌면 돌아올 것이다.
잃어버린 신경이 되돌아오기까지 나는 한쪽 다리를 못쓰면서 집안에서 배회할 것이다
주방에서 욕실로, 그리고 나의 서재로 겨우 자리를 옮기며 삶을 유지해야 할것이다.
인간의 제일 큰 시련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추억들을 버리고 또 다시 먼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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