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폭설 쏟아지고, 나는 홀로 겨울산에 오른 것을 후회하지만 한천(寒天)의 거친 숨소리는 뼈와 혈관 속에 파고들어 육신을 몰아친다 무엇 때문에 나는 첩첩 암벽 기어올라 왔던가 발은 나아갈 곳 잃어 광폭한 추위의 창살에 갇혀 버둥거린다 살아 있는 자에게 고립이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저 아래 까마득한 설경(雪景), 뒷걸음질하는 등성이조차 죽음의 입을 벌린 거대한 무덤으로 다가올 뿐 사방에 기립하는 어둠을 보라 사나운 짐승 되어 닥치는 대로 이빨을 박고 물어뜯지 않는가 북풍과 함께 뿌옇게 소용돌이치며 이정표마저 꽝꽝 덮어버린다 푸른 피 들끓는 내 서른 살도 강철같은 힘으로 지워버리는 눈보라, 눈보라여 낭떠러지를 떠받친 암흑 속에서 흑조(黑鳥)들 날아오른다 육신은 이미 얼음 도가니 되었으니 살아 있다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