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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박수 - 한용국

공중부양박수 한용국 생각하면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예정된 수순이라고 해도 옳았다 얼굴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할 때 순전히 몸의 열 때문이라고 믿었다 발화점을 더듬어 보기엔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타올랐다 아이들도 탈 없이 자라났고 비교적 가질 만한 것도 다 누렸다 이웃들은 다정했고 거래는 잘 성사되었다 지나가면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쿨한 관계를 유지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게 현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후에는 기화되리라고 믿었다 바람과 놀게 된다는 말도 믿었다 사실 그는 바람을 사랑했던 남자였다 4층 높이의 허공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이 그가 닿고 싶은 곳이었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얼음이 박힌 듯 관절이 시리기 시작했다 얼음은 핏줄을 타고 온 몸에 퍼져나갔다 심장에는 ..

- 그의 애송詩 2021.10.12

우화의 강 - 마종기

2013. 10. 23.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

- 그의 애송詩 2021.10.12

한로(寒露) - 김명기 / 이상국

2013. 10. 8. 한로(寒露) 김명기 꽃무릇 한창인 마당을 결기 없는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나는 고즈넉하다 사라져가는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는 연민 그 내밀함은 착각으로부터 시작되므로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지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최초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게 시작됐지만 결국 슬퍼지는 한때를 위해 기울어지는 한창이라는 말 무수한 기억의 반복이 깊어져 꽃이 되고 한 사내를 고즈넉하게 만들어버린 날 하혈하듯 허물어지는 붉은 꽃잎 속으로 어제와 다른 바람이 들고 꽃그늘마저 지는 저 자리, 이제 더욱 쓸쓸한 날들만 피겠다 한로(寒露) 이상국 가을비 끝에 몸이 피라미처럼 투명해진다 한 보름 앓고 나서 마당가 물수국 보니 꽃잎들이 눈물 자국 같다 날마다 자고 나면 어떻게 사나 걱정했는데 아프니까..

- 그의 애송詩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