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은행나무의 말씀 - 김영선
천년 은행나무의 말씀 김영선 무겁고 화급할 때 그 부처님 찾아가면 그저 놓으라고만 하시더니 천태산 영국사 부처님도 하냥 같은 말씀이시라 본전도 못한 어설픈 장사꾼처럼 터덕터덕 내려오다 마주한 천년 은행나무, 멀거니 한참을 올려다보고 섰는 나에게 눈주름살 같은 가지 가만가만 흔들어 하시는 말씀, 견뎌라,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외로움도 견디고 오금에 바람 드는 참혹한 계절도 견뎌라 밑 드러난 쌀통처럼 무거운 가난도 견뎌라 죽어도 용서 못할 어금니 서린 배신과 구멍 뚫린 양말처럼 허전한 불신도 견디고 구린내 피우고도 우뭉 떨었던 생각할수록 화끈거리는 양심도 견뎌라 어깨너머로 글 깨우친 종놈의 뜨거운 가슴 같은 분노도 꾹 누르고 싸리나무 같은 가슴에 서럽게 묻혔던 가을 배꽃처럼 피어나는 꿈도 견뎌라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