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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角의 방 - 김종태

2014. 2. 2. 五角의 방 김종태 겨울나무들의 신발은 어떤 모습일까, 쓰러진 나무는 맨발이고 흙 잃은 뿌리들의 마음은 서서히 막혀간다 차마고도를 온 무릎으로 기어넘었나 가죽등산화가 황달을 앓는 뇌졸중 집중치료실, 수직의 남루와 사선의 슬픔 사이로 스미는 잔광에 빗살무늬 손금이 꼬물거린다 바른쪽 이마로 서녘 하늘을 보려는 글썽임이다 마음의 파편으로 서늘한 가슴을 잡는 암벽등반의 안간힘이다 기억은 끝끝내 한 점일까, 그곳에 느리게 닿아가는 사투들, 그 점을 먼저 안으려는 투신들, 어디로 향할 수 없는 주저함에 몸을 닫는 밤이다 피와 살의 경계로 한 가닥 비행운이 흐릿하다 지상의 방들은 언젠가 병실일 터이지만 스멀거리는 약냄새는 낯익도록 말이 없다 모든 비유는 환멸을 향한다고 이토록 고요한 읊조림이 있었..

- 그의 애송詩 2021.10.12

태백산행 - 정희성

2014. 1. 24.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쫗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젊음과 늙음은 상대적 개념이다. 50줄에만 들어서도 젊은이들로부터는 고리타분하다는 기성세대 대접을 받는다. 반면 70 노인들의 눈에는 50대도 젊어 보인다. 하지만 수백년..

- 그의 애송詩 2021.10.12

거룩한 식사 - 황지우 / 지상의 숟가락 하나 - 이제인

2014. 1. 22.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지상의 숟가락 하나 이제인 1 저렇게도 슬플 수가 있을까 세상에 밥 먹는 모습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밥 한 숟가락 목구멍에 떠 넣는 일이 때로는 사람의 모든 것이 될 수도 ..

- 그의 애송詩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