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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노래 - 마종기

2014. 2. 21. 겨울 노래 마종기 눈이 오다 그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 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겨울은 우리를 침묵의 세계로 유인하여 차가운 정적 속에서 내면의 궁핍한 삶을 되새기게 하지만 그 반성적인 위로와 탄식 가운데 단순함에서 나오는 담백한 詩情을 느끼게도 한다. 회색빛 겨울 ..

- 그의 애송詩 2021.10.12

폭설, 민박, 편지 II :: 김경주

2014. 2. 19. 폭설, 민박, 편지 2 김경주 낡은 목선들이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리고 있다 벽지까지 파도냄새가 밴 민박집 마을의 불빛들은 바람에도 쉽게 부서져 저마다 얼어서 반짝인다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연필심이 뜨거워지도록 편지지에 바다소리를 받아 적는다 어쩌다 편지지 귀퉁이에 조금씩 풀어 넣은 그림들은 모두 내가 꿈꾼 푸른 죄는 아니었는지 새 ·나무· 별· 그리고 눈 사람이 누구하고도 할 수 없는 약속 같은 그러한 것들을 한 몸에 품고 잠드는 머언 섬 속의 어둠은 밤늦도록 눈 안에 떠있는데 어느 별들이 물이 되어 내 눈에 고이는 것인가 바람이 불면 바다는 가까운 곳의 숲 소리를 끌어안고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그러나 나무의 속을 열고 나온 그늘은 얼지 않고 바다의 높이까지 출렁..

- 그의 애송詩 2021.10.12

적막 - 송재학

2014. 2. 9. 적막(寂寞) 송재학 빙하가 있는 산의 밤하늘에서 백만 개의 눈동자를 헤아렸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별과 나를 쏘아보는 별똥별들을 눈부릅뜨고 바라보았으나 별의 높이에서 나도 예민한 눈빛의 별이다 별과 별이 부딪치는 찰랑거리는 패물 소리는 백만 년 만에 내 귀에 닿았다 별의 발자국소리가 새겨졌다 그게 적막이라는 두근거림이다 별은 별을 이해하니까 나를 비롯 한 모든 별은 서로 식구들이다 - 계간『시와세계』 2012년 가을호

- 그의 애송詩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