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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詩 series 1 /사과꽃 한송이 떨어졌던가 - 박규리

2014. 3. 21. 사과꽃 한송이 떨어졌던가 박규리 느닷없는 소낙비에 흠뻑 젖어 나타난 사람 툇마루에 앉아 함께 젖는 추녀 끝만 쳐다보던 사람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흔들리는 제 마음이더라며 삶의 고단한 체증 맺힌 명치 끝만 쓰리게 쓰다듬던 사람 밤낮으로 취한 세상은 부옇기만 한데 내가 흐르는지 세상이 내 속을 흐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던 사람 조용히 두 손을 오래 부비던 사람 출렁이는 가슴은 밤마다 넘쳐 흐르고 돌아보면 눈물 아니면 살 수 없지만 누구 한번 모질게 원망은 한 적 없다던 사람 이제라도 술 끊고 사람답게 살아봐야겠다며 쓸쓸히 웃던 사람 때마침 사과꽃 한송이 떨어졌던가...... 빗물에 흩어지는 사과꽃잎만 눈 시리게 바라보던 사람 앞산 이마에 노을이 지고, 노을에 젖은 낡은 오토바이 털털..

- 그의 애송詩 2021.10.12

손톱 바다를 읽다 - 이장욱

손톱 바다를 읽다 이장욱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의 묘비명은 Don't try이다. 나는 거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손톱이 끝까지 자라는 세계에서 매일 실패했기 때문에. 그것이 싫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의 가장 먼 곳에서 나를 대신하여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나는 점점 불규칙해지고 자꾸 부정하고 깊은 밤에 깨어났다. 캄캄한 하수도의 생활을 혐오했다. 쥐도 싫었고 악취도 싫었다.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검은 물의 흐름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정확한 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의심하였다. 그 밤의 바다에서는 파도가 나를 이해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래디컬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이다. 의도된 아이러니는 이미 아이러니가 아니다. 알레고..

- 그의 애송詩 2021.10.12

로드 맥퀸(Rod McKuen)의 저음 속에 갇혀있다가

2014. 3. 16. 겨우내 로드 맥퀸(Rod McKuen)을 들었습니다 겨울은 로드 맥퀸(Rod McKuen)의 저음 속에 갇혀있다가 출퇴근 시간에만 삐죽 얼굴을 디밀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봄이 오겠지요 늘 생각보다 빨리 당신이 떠나는 것처럼 생각보다 빨리 하루가 가고 어제는 잊혀지고 그래서 이젠 겨울강이라던가 편지와 같은 사랑을 구걸하는 시들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코 당신의 눈과도 눈 맞추지 않기로 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피로 따위도 버리기로 했습니다 불면의 방 따위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빨리 겨울이 가듯 무진무진 굴러다니던 권태로움도 사실은 사치이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보던 거울도 버리면서 당신앞에서 은밀히 꾸미던 나의 앙탈도 버리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울은 어디에도 없기..

- 그의 애송詩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