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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의 집 - 이상국

2014. 3. 14. 물 속의 집 이상국 그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 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고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마을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마리 새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 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설악이 물 속의 집 뜨락에 아름다운 놀빛을 두고 가거나 산그림자 속 화암..

- 그의 애송詩 2021.10.12

풍(風) - 김종태

2014. 3. 13. 풍風 김종태 지난 겨울 눈시울 아래쪽이 수시로 실룩거렸다 바람에는 화열이 성하고 음혈이 부족한 내풍과 뇌혈관 장애로 정신을 잃는 중풍이 있다며 요즘 풍은 영글지 못한 뇌수를 흔들기도 한다며 의원은 안팎 바람 모두를 조심하랬지만 수없는 일몰과 일출이 허허로운 철새들의 도래지를 지날 때마다 마음에서 비켜서던 바람의 기운이 오늘은 몸 한구석 깃들어 있음에 오른쪽 안면근육이 저 혼자 춤출 때에도 두 손바닥 비벼 살린 맞불을 놓아 시간을 잃고 서성이는 한 사람을 기린다 봄바람을 타고 이 골 저 골 떠도는 만춘의 민들레 홀씨처럼 미혼의 가을에도 봄은 깃들어 황금빛 그물의 일몰에 등져 있음에도 열기 머금은 황사로 낯은 화끈거리건만 세상 애증의 등허리를 넘어가는 이 바람은 난만한 초월의 씨앗을 ..

- 그의 애송詩 2021.10.12

적막한 사람 - 송재학

2014. 3. 10. 적막한 사람 송재학 김형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가 그림에 기대어 모든 걸 작파하고 섬으로 떠날 때 나는 여전히 시골에 있었다 아니다, 가끔 이곳에도 안개는 휘감겨와 섬처럼 쓸쓸하고도 달콤한 꿈을 엿보이곤 했다 김형은 이를테면 스스로 하나의 섬이 되고자 南行을 이루었으리 편지는 자기를 완전히 적시는 비, 자기 중심적인 절망, 자기 중심적인 기쁨에 넘쳐서 머리맡 백열등은 내내 환하고 늦게 듣는 음악으로 눈 쌓인다 불을 거쳐 온 한 줄기 겨울강 지켜보면 불안의 물이끼, 불면의 고기떼 모여 있고 오래 김형의 풍경 일부가 떠내려왔다 밤 동안 얼음 꺼지는 소리 늦은 한탄 따위로 목젖 붓고 새벽이면 강의 물소리는 빨라졌다 …….떠나온 것이 단순히 그림만 그리고 싶은것은 아니었지 ……그림은 오히..

- 그의 애송詩 2021.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