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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동 버스 종점 - 최호일

2014. 9. 3. 장지동 버스 종점 최호일 버스를 잘못 내렸네 장지동은 모르는 곳 입이 없고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내 몸에 모르는 물건을 놓고 나간 듯 신열이 나고 개망초 꽃이 보였네 탁자가 있고 낡은 시간이 놓여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머리칼이 하얀 남자가 상점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네 칠십 년대식으로 사이다를 샀네 나는 이미 사라진 풀벌레 소리인가 아마존의 주인 없는 미나리 밭으로 두 시간 걸어온 걸까 시계가 고장 나 지구별에 늦게 도착한 고양이의 신음 소리를 냈네 나 장지동에 잘못 왔네 라면을 먹지 않았네 내 몸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다녀간 곳 장지동에 가야겠네 그곳은 한없이 가다가 개망초 앞에서 멈추는 곳 미나리 밭을 지나 목성을 지나 더 먼 별의 기억을 지나 라면을 후후 ..

- 그의 애송詩 2021.10.13

바다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우리는 이별을 할 수 있다 - 김문호

바다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우리는 이별을 할 수 있다 김문호 말하지 않아도 좋을 일들이 어쩌면 그녀의 뇌리에 떫은 부담으로 각인되어 서로의 간극을 만들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미세한 모세혈관정도의 틈새였지만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고스란히 박힌 고백 같은 언어들은 그녀에게는 점점더 내를 만들고 강을 만들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섬세한 그녀는 그 언어들을 조각조각 추스려 부지런이 심장 구석에서부터 쌓아두었을 것이다. 차근차근하던 심장의 박동이 어느새 귓속의 달팽이관을 세차게 흔들어대는 이명으로 울릴때 그녀는 더이상 동반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두지 못했다 이별이다. 우리는 바다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이별을 이룰 수 있다 연안에서의 아쉬움도 길게 고동을 울리며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여객선의 흔적처럼 ..

- 그의 애송詩 2021.10.13

똬리 다섯 개 - 이상국

똬리 다섯 개 이상국 배다리 솔밭 살던 장수 아버지 별명이 똬리 다섯 개, 아잇적부터 물건이 하도 커 거짓말 좀 보태면 홍두깨만해서 물동이 이는 똬리 다섯 개를 걸어도 끄떡없었다. 이게 수캐처럼 처녀 과부 안 가리고 밤낮 없이 껄떡거리는 바람에 사람 축에도 못 들고 몰매똥매 숱해 맞았다. 어느 해 봄 이웃집 닭에다 그 짓을 했다고 온 동네가 수군 거리자 장수 할아버지 아예 뒈지라고 뒤란 도라무깡에 엎어놓고 집채 만한 돌로 눌러놓았는데 밤이 되자 땅 파고 기어나와 또 과붓집을 기웃거렸다는 장수 아버지, 올 봄 저 세상 가며 그 좋은 물건도 가지고 갔다. 지난 겨울부터 올 봄 들어서까지 이상국시인의 시를 많이 읽었다. 겨울에 서재에 들어앉아 읽는 그의 시는 음산한 겨울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진후 쨍 하게 맑..

- 그의 애송詩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