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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II / 비 오는 거리에서 한 잔 술을 마신다 - 김궁원

비 오는 거리에서 한 잔 술을 마신다 김궁원 메마른 가슴을 앞세우고 길을 나서니 비가 내린다. 분주한 거리는 온통 비에 젖어 흐르고 분주한 거리만큼 그만큼에 멀어진 마음은 길에 서 있다 술잔을 든다. 빗물만 흐르면 외로울 것 같아 우산 속에서 숨길 수 없는 마음을 술잔에 섞어 마신다. 살다 보니 빗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더라. 잡아 둘 수 없는 세월이듯 갈지자로 따라오다 구름처럼 떠나버리는 세월의 무게로 서 있는 모습도 비에 젖더라. 사랑을 해부하고 삶을 뒤척이며 한 잔술로 취해보는 비 오는 거리 술잔을 채우는 흘러간 유행가 가사 속에서 한 잔 술에 모습은 날숨 쉬며 눈 감아도 취한 것은 가슴으로 흐르는 빗물 마시자 마셔버리자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한 잔에 또 한 잔을 마시다 보면 사람이란 그런 것, ..

- 그의 애송詩 2021.10.15

Spring I /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이병률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 이병률의 봄이다. 남도에서는 벌써 봄 소식이 들려오고 지하도 꽃 집에는 노란 후리지아가 알루미늄 주전자에 꽂혀 행인의 시선을 끈다. 인사동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

- 그의 애송詩 2021.10.15

사랑의 역사 - 이병률

Historia De Un Amor 사랑의 역사 이병률 - '상처'에 아픈 나, 그래도 심장은 또 뛰네 -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고 다발 지역'이라는 팻말을 볼 때가 있다. 길에도 사고가 잦은 길이 있다는 말이다. 안개가 잦은 곳이 있고 ..

- 그의 애송詩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