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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인숙 - 송인필

오래된 여인숙 송인필 팻메스니와 레드제풀린이 머물다 간 여인숙, 칠 벗겨진 나무문이 삐걱 소리내며 반겨주었다 집주인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길 없었다 우울한 성가가 새어나왔다 바하 B단조 미사 중 아뉴스데이, 긴 길을 열고 긴 길을 닫았다 이 곳에 머물던 이들은 모두 독을 품었지 독을 삼키고 독을 뱉어내던 꽁꽁 언 겨울이 나를 반기며 차갑게 뛰어왔다 차이코프시키 우울한 세레나데, 떨리는 바늘이 심장을 콕콕 찔렀다 서러움이 그리웠다 외로움이 그리웠다 고독이 그리웠다 소르, 스카이버드, 구름, 피닉스, 첼로, 깡소주, 함께 모여 독을 마시던 참 아름다웠던 옛집 LP만 고집하던 주인은 없다 어디 갔을까 이젠 문 닫힌 집 자꾸 울고 싶은집 쟈클린 뒤프레가 콜니드라이를 켜던 집 사랑이 고픈 집 사랑이 넘치는 집 ..

- 그의 애송詩 2021.10.15

낙엽을 밟았다는 사건 - 복효근

낙엽을 밟았다는 사건 복효근 밟히는 순간 아득히 부서지는 낙엽들의 소리 내가 걸음을 갑자기 멈춘 것은, 오후 약속을 잊은 것은 그 소리 탓이었다 그녀는 기다리다 떠나갔고 나는 언덕에서 네 시 기차가 떠나는 소리를 듣는다 - 한 生이 낙엽 부서지는 소리로 바뀔 수 있다니 또 발밑에선 낙엽이 부서지고 먼 곳에선 새가 난다 누군가 또 약속을 잊고 누군가 또 기차를 바꿔 타나보다 낙엽 소리에 먼 하늘별이 돋는다 詩 :: 복효근 - 낙엽을 밟았다는 사건 Photo :: Chris Yoon 어디쯤 달려왔을까? 다시 돌아가야할 길이 걱정됩니다. 차를 잠시 멈춰세웠습니다. 노랗게 불타오르는듯, 한 그루 은행나무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하고 노란 카펫위에 앉았습니다 John Sokoloff - A S..

- 그의 애송詩 2021.10.15

장외(場外) - 장일만

場 外 우연히 알게된 사내와 어울려 그의 작업장을 방문했다. 아!, 그곳은 내가 알지못하던 또 하나의 세계였다. 거칠고 험한, 세상의 막장같은 현장. 그동안 내가 늘 입버릇처럼 힘들다고 말하던 예술의 세계는 얼마나 사치스런 감상이었던가!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내들이 각자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이상과 달리 세상을 살아 나간다. 윤필립 그들 모두는 바람 든 가슴을 가졌다 허기로 잔을 채우고 사내들은 세상 고샅에서 닳아 온 지문을 찍어대며 잠시 태생을 잊는다 가슴 부딪는 건배가 오가고 출렁대는 밤별을 무수히 담아 신산한 일상과 섞어 마신다 사내들 몸속에 파고드는 말간 전율, 그들은 늘 중심에서 비켜 있었으므로 생의 언저리에서 자주 굴절되던 의지를 세우려고 한낮을 달려왔는데 외려 비틀댄다 주고받는 삶의 지론이..

- 그의 애송詩 202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