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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백일홍(木百日紅) - 손택수

2021. 7. 18. 술 취한 백일홍 1 손택수 백일홍 아래 누가 술병을 세워놓고 갔다 백일홍과 함께 대작이라도 했던가 해 떠라 해 떨어져라 술병을 기울였든가 술만 먹으면 몸에 난 상처자국들이 먼저 붉어져오곤 했다가 시려오곤 한다 내가 까마득 잊었다고 생각한 상처들, 흉터가 없으니 이제 다 나았다 훌훌 털어버린 기억들, 살갗 위로 고개를 내밀곤 한다 연고로 매끈해진 살갗 속에서 욱신거리는, 술만 먹으면 제 상처와 대작을 하면서 필름이 끊길 때까지 가야 하는 사내들이 있다 꽃펴라 꽃 져라 반쯤 마신 술병 앞에 놓고 백일홍 빛이 그늘까지 점점이 물들어 간다 술 취한 백일홍 2 손택수 백일홍 아래 누가 술병을 세워놓고 갔다 지는 꽃과 함께 대작이라도 했던가 해 떠라 해 떨어져라 술병을 기울였던가 빈 술병 앞..

- 그의 애송詩 2021.10.16

제라늄 살리기 - 신정민

* 솔 #건반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詩가 되지 못했다 솔,도 아니고 라,도 아닌 반음 음을 높이는 과정에서 무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옥타브에서 소리가 꺼지곤 했다 이른 봄 서리에 탄력을 잃은 피아노 건반 뚜껑을 활짝 열어놓았다 햇볕을 좋아하는 음계들 * 간유리 속의 불빛 사철 꽃이 피는 부지런하고 예쁜 제라늄은 추위가 치명적이다 시든 제라늄을 살리고자 애를 쓰면서 그린 일기 형식의 그림은 아크릴 캔버스에 배어있다 둥근 얼굴과 화폭 귀퉁이의 주홍빛 꽃잎은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닌 분명한 불투명 * 죽은 이후에야 인정을 받는 화가들, 이라고 썼다가 많은 미술가라고 고쳐썼다 시들고 있는 꽃을 살리는 화가를 알아보지 못한 건 나쁜 시력 때문이다 안경을 쓰고서야 알게 된 세상의 반음들, * 그래서 런던행 ..

- 그의 애송詩 2021.10.16

해남길, 저녁 - 이문재

먼저 그대가 땅끝에 가자 했다. 그곳에가면, 저녁은 더 어둔 저녁을 기다릴텐데... 해남길, 저녁 이문재 먼저 그대가 땅끝에 가자 했다 가면, 저녁은 더 어둔 저녁을 기다리고 바다는 인조견 잘 다려놓은 것으로 넓으리라고 거기, 늦은 항구 찾는 선박 두엇 있어 지나간 불륜처럼 인조견을 가늘게 찢으리라고 땅끝까지 그대, 그래서인지 내려가자 하였다 그대는 여기가 땅끝이라 한다, 저녁놀빛 물려놓은 바다의 남녘은 은도금 두꺼운 수면 위로 왼갖 소리들을 또르르 또르르 굴러다니게 한다, 발 아래 뱃소리 가르릉거리고 먹빛 앞섬들 따끔따끔 불을 켜대고, 이름 부르듯 먼 데 이름을 부르듯 뒷산 숲 뻐꾸기 운다 그대 옆의 나는 이 저녁의 끄트머리가 망연하고 또 자실해진다, 그래, 모든 끝이 이토록 자명하다면야, 끝의 모든 ..

- 그의 애송詩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