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560

禪林院址에 가서 - 이상국

禪林院址에 가서 이상국 禪林으로 가는 길은 멀다 미천골 물소리 엄하다고 초입부터 허리 구부리고 선 나무들 따라 마음의 오랜 폐허를 지나가면 거기에 정말 禪林이 있는지 영덕, 서림만 지나도 벌써 세상은 보이지 않는데 닭죽지 비틀어 쥐고 양양장 버스 기다리는 파마머리 촌부들은 禪林 쪽에서 나오네 천년이 가고 다시 남은 세월이 몇번이고 세상을 뒤엎었음에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농가 몇채는 아직 面山하고 용맹정진하는구나 좋다야, 이 아름다운 물감 같은 가을에 어지러운 나라와 마음 하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소처럼 禪林에 눕다 절 이름에 깔려 죽은 말들의 혼인지 꽃들이 지천인데 經典이 무거웠던가 중동이 부러진 비석 하나가 불편한 몸으로 햇빛을 가려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는데 마흔아홉 해가 걸렸구나..

- 그의 애송詩 2021.10.16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여름 민구 여름을 그리려면 종이가 필요해 종이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크거나 훨씬 작을 수도 있다 너무 큰 해변은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은 액자에 걸면 가져가버린다 당신이 조금 느리고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남은 검은색 파스텔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다를 그리자 당신의 여름이 기분이거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여행지라면 시원한 문장을 골라서 글로 쓸 수 있는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나를 기다린다면 좋겠다 파도가 치고 있다 누군가는 고래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거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겠지만 고래는 너무 커서 밑그림을 그릴 수 없고 모래는 너무 작아서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두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이 오면 ..

- 그의 애송詩 2021.10.16

나는 외로웠다 - 이정하

나는 외로웠다 - 이정하 바람 속에 온 몸을 맡긴 한 잎 나뭇잎 때로 무참히 흔들릴 때 구겨지고 찢겨지는 아픔보다 나를 더 못견디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어두워야 눈을 뜬다 때로 그 밝은 태양은 내게 얼마나 참혹한가 나는 외로웠다 어쩌다 외로운 게 아니라 한순간도 빠짐없이 외로웠다 그렇지만 이건 알아다오 외로워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라는 것 AM. 이른 새벽부터 카톡(kakao talk)신호음이 연달아 울린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들. 한 편으로는 감사하고 고맙지만 한 편으로는 이것도 모두 쓸데없는 정신적인 공해다. 사람이 외로울땐 그냥 내버려둬야한다. 울고싶을땐 혼자 울게 둬야 정화(淨化)되는게 아닐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일이라고해서 언제부터 이렇게 지인들..

- 그의 애송詩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