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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 신대철

바람이 가진 힘은 모두 풀어내어 개울물 속에서 물방울이 되게 바람을 적시는 비 비 같은 사람을 만나려고 늦 가을의 미루나무보다도 훤칠하게 서 있어본 사람은 보이겠다 오늘 중으로 뛰어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초조히 구름 속을 서성거리는 빗줄기, 빗줄기쯤. - 신대철,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중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비가 내린다. 비에 젖어 본 사람은 안다, 내리는 비와 그 비에 옷깃이 젖으며 무겁게 젖어드는 눅눅한 슬픔을. 그는 떠났고, 먼 길을 떠돌며 그를 그리워해야 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슬프다. 그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나는 구름처럼 떠돌고, 나는 더더욱 그를 그리워할 것이고. 그 깊은 마음 모두 풀어내어 바람으로 한 번쯤 지나칠 수는 없을까, 가만히 가만히 오래전 그 먼 시간을 떠올리며, ..

- 그의 애송詩 2021.10.16

기억 저편 - 윤성택

기억 저편 윤성택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뒤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간밤에 큰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는 낙엽송 몇 그루가 발아하여 어린 싹이 자라고 울창한 숲은 여전하였다 숲,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서서이 사라져가는 새벽안개. 숲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큰 나무 하나가..

- 그의 애송詩 2021.10.16

밤기차 - 윤성택

나, 밤기차를 탔었다 검은 산을 하나씩 돌려 세워 보낼 때마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사선으로 몸을 틀었다 별빛은 조금씩 하늘을 나눠가졌다 종착역으로 향하는 기차는 인생을 닮았다 하루하루 세상에 침목을 대고 나 태어나자마자 이 길을 따라 왔다 빠르게 흐르는 어둠 너머 가로등 속 누군가의 고단한 길이 들어 있었다 간이역처럼 나를 스쳐간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차창 밖은 세상의 가장 바깥이었다 함부로 내려설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 기차표를 들여다보았다 가는 곳이 낯설어 지고 있었다 - 윤성택의 '밤기차' 이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기차입니까, 라고 묻고 싶은데 이 나라 말을 알지를 못합니다 이 기차가 어질어질한 속도로 당신을 데려가 어디에 내려놓을지를 알고 싶은데 물음은 물컹 내 귀에 도로 닿습니다 당신의 시간의 옆..

- 그의 애송詩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