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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너에게로 - 박노해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 '별은 너에게로' ( 박노해의 '숨고르기'중에서) 별을 본 일이 있는가? 물론 서울 하늘에선 별을 본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양평 산위에 있는 寫友의 농막에서 하루밤을 지낼때 밖에 나왔던 적이 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이 빛나고 있었다. 寫友는 밤하늘을 가리키며 '저건 북극성... 길잃은 사람들이 저 별을 보고 찾아 온대요, 그 옆에 국자모양으로 된 ..

- 그의 애송詩 2021.10.16

그 5월에... - 곽재구

자운영 흐드러진 강둑길 걷고 있으면 어디서 보았을까 낯익은 차림의 사내 하나 강물 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염색한 낡은 군복 바지에 철 지난 겨울 파커를 입고 등에 맨 배낭 위에 보랏빛 자운영 몇 송이 꽂혀 바람에 하늘거린다 스물 서넛 되었을까 여윈 얼굴에 눈빛이 빛나는데 어디서 만났는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한 형제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 뜨거운 눈인사를 한다 그 5월에 우리는 사랑을 찾았을까 끝내 잊었을까 되뇌이는 바람결에 우수수 자운영 꽃잎들이 일어서는데 그 5월에 진 꽃들은 다시 이 강변 어디에 이름도 모르는 조그만 풀잡맹이들로 피어났을까 피어나서 저렇듯 온몸으로 온몸으로 봄 강둑을 불태우고 있을까 돌아보면 저만치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굽이치는 강물 줄기를 따라 자운영 꽃들만 숨가쁘게 빛나고 그 5..

- 그의 애송詩 2021.10.16

노란 수족관 - 김종미

노란 수족관 김종미 잠을 풀고 베란다 창을 열자 열대어 한 마리가 스르르 헤엄쳐 들어왔다 붉은 산호초는 잘 자라고 있으므로 바다는 안심하고 푸르렀다 눈동자 하나를 바다로 흘려보내고 남은 눈동자 하나에 차가운 바다를 접어 넣고 있을 때 붉은 열대어가 가느다란 담배에 불을 붙여 내 입에 물려주었다 담배연기는 순간의 조합이던가 초고속으로 필름이 감기고 머릿속은 락스를 푼 듯 하얘졌다 그때 튀어나온 사랑한다는 말은 먼 훗날 어떻게 해석될까 붉은 열대어는 차례로 비늘을 벗었다 그가 눈부시게 하얀 맨몸의 사내가 될 때까지 붉은 목단 장판 뜨겁게 구워졌다 그때 우리를 해안으로 밀어낸 것이 밀실이었는지 담배연기였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산수유가 바다 속에서 꽃을 피웠는지 우리는 묻지 않았다 손톱을 세워 묻지 마라 봄이냐고..

- 그의 애송詩 2021.10.16